(+)분류 : 문학


목차

1. 개요
2. 내용

1. 개요 ✎ ⊖

손현준 선생님께서 인천과학고에 와서 알게된 점, 느낀 점 등을 자유롭게 작성한 글이다.

2. 내용 ✎ ⊖

삶의 궤적에서 내가 몸 담았던 곳은 일종의 꼬리표가 되고, 사람들은 그 꼬리표에서 주어지는 정보로 사람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내가 선택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꼬리표가 된다.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어떤 아파트에서 사는지 등. 많은 정보들이 알아서 몸에 덕지덕지 붙어 떨어지지도 않은 채 나를 판단하는 정보로 이용된다. 그런 시선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빠른 판단과 처세술이 필요한 생존 경쟁에서 일종의 편견은 무조건 나쁘다고 몰아붙일 수만 없는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앞서 얘기한 꼬리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므로 꼬리표로 인한 편견이 부당하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샘솟는다. 하지만 개인이 선택한 꼬리표라면 어떠할까? 사실 스펙이라고 부르는 많은 꼬리표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선택하기만 한다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부단한 노력이 동반되는 선택이다. 사람들은 좋은 꼬리표를 얻고 싶어서 많은 노력과 비용을 투자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꼬리표가 달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꼬리표가 어떤 꼬리표인지가 -긍정인지 부정인지, 삶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모두 꼬리표에 나름의 가치와 판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스스로 그런 인식이 있으므로 보다 더 좋은 꼬리표를 가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좀 과장하면 어떤 노력의 ‘동기’에 꼬리표의 모습이 꽤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꼬리표가 주는 편견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어릴 때 잘 몰랐으나 교사가 되고 보니 알게 된 사실 하나. 상당히 많은 사람은 어떤 고등학교로 진학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많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진학 후 다시 여러 갈래로 삶의 모습은 분화되지만 아주 큰 갈래는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순간 어느 정도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금수저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즉, 개인 선택으로 달리는 첫 번째 꼬리표는 겨우 중학교 3학년 때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크게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지향하는 특성화고와 종합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 특수한 분야에 특출난 학생들을 선발하여 양성하는 특목고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고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가 가장 많으므로 이름 그대로 일반적인 선택은 일반고로 진학하는 것이다. 수능, 수시, 고교학점제, 대입 제도 개편 등 많은 입시 관련 이슈들은 일반고 학생을 대상으로 가정하고 있다. 일반적이지 않은 특성화고와 특목고는 별도의 세상에서 돌아가고 있으므로 많은 사람이 자세히 알지 못하며, 그렇게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사람에게 그쪽 세상은 이미 자신과 관련이 없으므로.
하지만 관심의 유무와 상관없이 보통 사람들이 특목고 학생에게 가지는 강력한 편견 중 하나는 그들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우수한 인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명문대에 쉽게 진학할 것이고, 좋은 직장에 취업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과 계열의 과학고 학생이라면 수학과 과학에 탁월한 재능이 있고, 항상 수식을 쓰고 있을 것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그런 학생의 비율이 높은 것도 사실이니까. 이것이 중학교 3학년 때 부단한 노력과 함께 선택하여 획득한 첫 번째 꼬리표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우수할 것이라는 편견.
하지만 사람은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생물이다. 엄청난 천재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그 나이대의 과업이 있고, 서서히 조금씩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성장에는 속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며, 학생들은 여전히 삶의 경험이 부족한 나이이다. 그럼에도 과학고에 딸린 첫 번째 꼬리표는 무겁게 학생들을 짓누른다. 우수하게 성장하기 위해 과학고에 진학한 것인데 마치 이미 우수한 상태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꼬리표가 스스로에게도 작용해서 주변 학생들을 우수하게 바라보게 만들고, 상대적으로 본인은 초라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입학식을 거치기도 전에 중3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선행학습을 하게 만들고, 복잡한 수식이 난무하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이해하기도 전에 아는 것처럼 행동하게 만들고, 모르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 항상 나만 뒤처져 있다는 느낌에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게 만든다. 첫 번째 꼬리표가 가지는 무게이다.
이는 입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명문대에 가는데 과학고 출신인 나만 못 가면 어떡하냐는 불안감, 과학고 나왔는데 그것밖에 못 갔어라고 사람들이 조롱할 것만 같은 공포, 일반고에 갔으면 겪지 않았어도 될 여러 부담감 속에서 속삭이는 전학과 자퇴에 대한 유혹 등. 학생들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칠 여러 고민은 첫 번째 꼬리표의 부작용이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선입견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무엇을 인식하기 전에 이미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견해이므로 선입견 자체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적 선입견이 형성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공통적인 사례가 필요하다. 그것이 쌓여서 사회적 선입견을 만든다. 하지만 편견은 다르다. 많은 색깔이 공존하는 하나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색깔만 추출하여 보는 것이다. 그렇게 치우친 관점으로 세상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그것은 결국 고정관념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선 그것을 막아야 한다. 선입견이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선입견은 아직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약간의 정보일 뿐이다. 사람이든 집단이든, 학문까지도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저 약간의 사전 지식일 뿐이다. 선입견이 변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새로운 정보를 더욱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보통 다른 사람의 편견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것 또한 나의 편견일지 모른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영원불멸할 것 같은 느낌. 한번 관계가 틀어지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나에 대해 생긴 고정관념이 계속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이야말로 나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부정적 편견이다. 내가 편견을 무너뜨리고, 고정관념을 해체할 수 있다면, 능히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받아들이기 편하다. 설혹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건 어차피 내가 알 수 없는 일. 나의 꼬리표만을 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이 아주 많으리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말 나의 모습대로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실천이 아닐까, 싶다.
과학고에 와서 처음으로 맡은 학급의 급훈을 ‘무너지지 말 것’이라고 정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학생들을 바라보며 가장 필요한 것이 그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학고로 진학했다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각종 선발과 시험 속에서 무너질 것 같은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학고도 일반고와 같이 다양한 학생들이 섞여 있는 교육의 장이고, 그들 하나하나 자신만의 강점이 있음에도 ‘특수한 목적’으로 ‘특수한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압박 속에 다양한 색깔이 꽃 피우지 못할까 염려되었다. 살다 보면 몇 가지 꼬리표가 달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든 내 삶의 궤적이 남긴 꼬리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기억했으면 한다. 어떤 꼬리표이든 꼬리표가 나보다 더 나를 잘 표현할 수는 없다. 나의 태도와 생각, 행동이 그 꼬리표에 다른 색을 입힐 때까지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결국 사람들은 온전히 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2 12:02:53  | 조회수 :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