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r5)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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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역사]]

== 개요 ==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대한 문서

== 배경 ==
19세기 이후 유럽에는 민족주의가 발흥하여 게르만족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범게르만주의(대독일주의)와 슬라브족인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범슬라브주의가 충돌하고 있었다. 이에 기존 제국주의 국가인 대영제국과 프랑스는 각각 통일하여 이제 막 민족주의 정서가 고조된 독일과 이탈리아와 대립하고 있었다. 한편 유럽의 화약고로 유명한 발칸 반도에는 수많은 민족[*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보슈냐크인, 세르비아인 등... 놀라운 건 이들의 언어는 모두 동일하지만 종교(가톨릭, 이슬람교, 정교회)에 따라 민족 개념이 달라 1990년대 서로 전쟁까지 간다....]이 있다.

19세기가 되자 오스만 제국은 수명을 다한 채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듣고 있었으며 이는 러시아가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치르며 계속해서 남하한 것도 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합스부르크 제국)은 주변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남은 방향인 발칸 쪽으로 확장하며 오스만 제국을 처리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다. 같은 목표를 가졌던 두 국가는 신성 동맹을 체결하려 하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나머지 화가 났던 오스트리아 측은 해체시킨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된 이후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을 거쳐 비스마르크가 체결한 독일제국-합스부르크 제국-러시아 제국의 삼제동맹으로 다시 발전하게 된다. 반면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킨 빌헬름 2세는 이러한 동맹이 마음에 들지 않아했고, 러시아는 삼국협상으로 빠지며 다시 동맹은 붕괴된다. 이탈리아는 튀니지를 노리고 있었으나 프랑스가 먹어버리자 프랑스에 적대적으로 보게 되며 독일 편의 삼국동맹에 가입했다. [* 그러나 전쟁 직전 이탈리아는 삼국협상 쪽으로 이탈한다.] 한편 영국은 당시 최고의 해상 제국이었는데, 독일에 대해 중립국으로 있었지만 독일이 계속 식민지를 세우고 영국의 지위를 넘보려 하자, 영국은 독일을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되며 프랑스와 영불동맹을 맺게 된다. 한편 동 시기 러시아는 러일전쟁으로 치러진 포츠머스 조약으로 몰락한 상황이었기에, 목표를 기존 노선이었던 러시아 견제를 버리고 독일 견제로의 방향을 세우게 된다. 이렇게 영러협상이 체결되며 영국-프랑스-러시아 제국의 3국 협상이 만들어진다. 

== 전쟁 발발 ==
1908년 오스만 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합스부르크 제국이 보스니아를 합병하게 되는데, 발칸 반도에서 통합 유고슬라비아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던 세르비아에서 반발하게 되고 또 같은해에 불가리아 역시 오스만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완전히 독립을 선언했으며, 여기에 더해 아드리아해로의 진출을 위해 알바니아 지역을 노리던 세르비아 왕국을 견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제국이 알바니아 왕국의 독립을 지원하자 세르비아의 남슬라브 민족주의자들은 뚜껑이 열려버리고 말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제국의 지원으로 세르비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이 서로 접촉하였고, 여기에 세르비아 2중대였던 몬테네그로 왕국과 그리스 왕국이 가담한 발칸 동맹이 성립했다. 그러나 발칸 동맹 국가들은 러시아 제국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오스트리아-헝가리보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을 발칸 반도에서 몰아내는 데 더 몰두하게 된다. 발칸 동맹의 주도국가인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모두 팽창정책을 추구했지만, 오헝제국으로부터 땅을 뜯어내기에는 아직 오스트리아가 강력했으니 그나마 유럽의 환자로 전락한 오스만 제국이 만만하게 보였던 것. 이것이 제1차 발칸 전쟁(1912년 가을 ~1913년 봄)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썩어도 준치라고 약소국들의 모임인 발칸 동맹보다 체급이 훨씬 더 큰 오스만이 승리를 거둘 거라는 열강들의 예상을 깨고 발칸 동맹이 압승을 거둬 에노스-미디아 선 서쪽의 모든 영토를 획득했다. 1차 발칸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떡실신시킨 발칸 동맹 국가들이었지만, 이제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뜯어낸 영토를 어떻게 나눠 가질지 싸우게 되었다.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 지역을 점령한 세르비아였으나 세르비아의 아드리아 해 진출을 두고볼 수 없었던 오헝제국과 이탈리아의 개입으로 알바니아가 독립하면서 그나마 먹은 북마케도니아의 절반을 원래 주기로 되어 있었던 불가리아한테 주는 것을 거부하고, 불가리아 왕국은 불가리아 왕국대로 자신의 몫(산 스테파노 조약 당시의 마케도니아)을 세르비아와 그리스에게 과하게 요구하면서 나머지 발칸 동맹 국가들과 갈등을 빚게 된 것이다. 이 분위기 속에서 보스니아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더욱 세르비아로의 통합을 열망하였고, 자국의 안정을 위하여 작게는 통합 정책, 크게는 제국 내 소수민족 전체가 동등한 주권을 가지는 대오스트리아 합중국을 그리고 있었던 제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독립을 실패하도록 유화 정책을 내세운 적의 수괴나 다름 없었다. 결국 발칸 전쟁이 끝난지 한해가 채 못 되어 보스니아 시찰에 나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에서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에 따라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대독일주의에 따라 독일도 전쟁에 가담하고, 러시아 역시 범슬라브주의에 따라 가담하며, 프랑스는 독일에 상대하기 위해 참전하고, 영국은 또다시 질서 유지를 위해 참전하게 된다.  이에 8월 3일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 전개 ==
=== 양면전선과 교착 상태 ===
독일군은 양면전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프랑스를 빨리 해치운 다음 러시아로 기차타고 간다는 슐리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프랑스를 해치우지 못하고 오히려 벨기에를 공격한 것이 중립국이던 영국의 심기를 건드려 영국이 참전하는 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프랑스를 상대로 독일은 더 이상 진격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참호를 건설하며 참호전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참호전에 빠지며 예상보다 포탄을 빠르게 소진하며,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는 전시경제로 돌리며 대량으로 찍어내기 시작한다. 반면 러시아는 그러한 기반이 안 되어 있어서 대량 생산을 못했고, 동부전선에서 가능성을 살짝 [[맛자욱|맛]]본 독일은 비밀리에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체결하며 오스만도 전쟁에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거의 멈춘다...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당시 영국령)의 수에즈 운하를 공격하지만 졸전 끝에 대패하게 된다. 독일은 영국 해군이 유틀란트 반도를 돌아서 동부 독일로 넘어오는 것만 막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너무 방어적이어서 U-보트를 활용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실행한다. 모든 배를 닥치는대로 다 침몰시키는 것이 전략이었다. 그러나 5월 루시타니아 호를 침몰시켰을 때, 미국인이 128명이나 타고 있었기에 미국이 반발했으나, 독일이 해당 작전을 취소하기로 결정하며 미국의 화를 잠재운다. 영국은 서부전선이 교착되자 오스만 제국으로 가기 위해 지브롤터를 통과해 코스탄티니예(이스탄불) 인근의 다르다넬스 해협에 상륙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이 최악의 상륙 작전인 갈리폴리 상륙작전이다. 여기서 맹활약을 거둔 케말 파샤는 오스만 제국 내에서의 인기가 매우 올라가게 된다. 또한 협상국과 동맹국 사이를 [[맛자욱|맛]]만 보던 이탈리아는 이쯤에서 협상으로 완전히 돌아서게 된다. 동부전선에서는 5월부터 독일과 합스부르크 제국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서부 등 러시아 서부 영토를 차지하게 되며 동맹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게 된다. 게다가 이쯤에서 불가리아가 동맹국 편으로 참전하며 발칸 내부의 전황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먹게 된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1916년 2월이 되어서야 본래 목적이었던 몬테네그로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을 점령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반란군이 나와서 애를 먹게 된다. 오스만 제국 역시 아라비아 반도에서 영국의 사주를 받은 하심 가문이 반란을 일으며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독일은 식량난을 겪어서 다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실행하게 된다. 영국이 1916년 한 해 동안 운송한 식량을 계산해서, 1달 동안 600000톤의 수송선을 6달 동안 계속해서 침몰시키면 된다는 계산을 하게 된다. 이쯔음 프랑스에서는 석탄이 고갈되기 시작하며 독일의 판단이 맞는 듯 했다. 그러나 협상국 측에서 호송선단을 실행시키며[* 여기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영국은 해줄 생각이 없었지만 프랑스 쪽에서 계속 주장해서 받아들여졌다...] 5051척의 배로 5500000톤의 석탄을 수송시키던 중 17척만 침몰당했다. 

=== 미국의 참전 ===
미국은 본래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전쟁 국가를 상대로 물자 수출을 하며 이익을 보았다. 그러나 루시타니아 호 침몰 사건을 겪은 미국은 중립을 유지했으나 지속되는 독일이 사주한 테러가 이어졌다. 가장 미국이 --긁힌--참전한 원인은 칭머만 전보 사건이다. 수십 년 전 미국-멕시코 전쟁을 통해 불법적으로 땅을 뺏긴[* 거의 절반 정도.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콜로라도 등] 멕시코에게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를 상대로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은 간단히 말해서 '''전쟁에 참전하면, 미국에게 뻇긴 영토를 주겠다'''는 내용의 문건을 전달하려 한다. 이 내용을 전달받게 된 멕시코 대통령은 이 제안을 고심 끝에 거절한다. 문제는... 영국이 이걸 중간에 해독해 버렸다!! 독일은 코드북 방식의 암호를 썼는데, 코드북은 어렵고 안전성이 매우 높은 대신 암호 해독 표를 적어놓은 책이 털리면 한순간에 털리게 된다. 문제는 영국이 전쟁 초기 항행 실수로 좌초된 독일의 배를 나포해서 그 표를 털었다는 거다. 이러한 내용을 들은 영국인은 정말인지, 독일이 이간질하려는 의도인지 등 오만가지 생각을 했으나 아무튼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저 내용을 말하자, 미국이 참전하게 된다. 미국은 중립 노선을 걸었고, 전선이 미국-영국-독일 삼국 간에 모두 연결되어 있었으나 전쟁 발발 후 영국-독일 전선을 끊어버렸고 미국은 독일이 영국과 화해하길 바란다며 그 전선을 빌려줬는데 뒤통수를 친 거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물론 미국의 참전 원인은 단순히 치머만 전보인 것은 아니고, 전부터 쌓여왔던 감정이 폭발한 것이 가깝다.

=== 러시아 혁명 발생 ===
그러나 1917년 3월(율리우스력으로 2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생한다. 황제 친위대가 전선에 나가있는 상황에서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군대가 혁명에 가담하며 러시아의 체제가 전복된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 러시아 공화국은 서방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지만 전쟁에 질려가던 군인, 시민들은 이를 못마땅하며 자유주의 측인 멘셰비키가 실각하게 된다. 한편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독일의 힘을 빌려 기차를 타고 러시아로 귀국한다. 11월(율리우스력으로 10월), 레닌의 볼셰비키가 무장봉기를 일으키며 러시아 공화국이 다시 한번 전복되고 해당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레닌은 독일과 강화를 맺게 된다. 이렇게 독일은 동부전선을 처리하며 서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 전쟁의 끝 ===
1918년 봄부터 전 세계적으로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자, 동맹국과 협상국 모두 큰 손해를 본다. 실제로 미군 사망자 53000명 중 45000명이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었다. 이렇게 되며 전력을 대량으로 잃게 된 양측은 하나씩 강화 조약을 맺는다. 우선 1918년 5월 루마니아와 부쿠레슈티 조약을 맺어 항복을 받는다. 미군은 1918년 8월부터 하루에 10000명씩 프랑스로 들어오게 되며, 협상군은 100만명의 대병력을 가지고 독일을 조지기 시작한다. 9월부터 하나둘씩 휴전 협정을 맺으며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 등이 하나씩 몰락의 길을 걷는다.

== 종전 ==
전후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반영해 국경선이 새로 개편된다.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외에서 생제르맹 조약, 세브르 조약, 뇌이 조약, 트리아농 조약 등이 체결된다. 주요 국가의 운명은 다음과 같다.
* 독일 제국 - 협상국과 일부 신생국에 영토 할양, 식민지를 영국과 프랑스에 이양, 막대한 전쟁 배상금 지불 (베르사유 조약)
* 합스부르크 제국 - 마찬가지로 일부 신생국 독립, 이중제국 해체
* 오스트리아 - 오리지널 독일어권만 남고 나머지 전부 독립 및 협상국에 할양(이탈리아의 쥐트티롤 병합 등) (생제르맹 조약)
* 헝가리 왕국 -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등으로 영토 할양 (트리아농 조약)
* 폴란드 - 폴란드 분할로 독일, 합스부르크 제국, 러시아에 찢겨나갔던 폴란드가 다시 생겼다. 
* 미국 - 영토에 변화는 없으나 세계 경제 1위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또한 유럽에 대한 채권국의 위치를 차지했다.]
* 영국과 프랑스 - 각각 나미비아, 토고, 뉴기니 등 독일의 식민지와 팔레스타인,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등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얻게 된다. 
* 러시아 제국 -> 소련 - 제국 정부가 망하고 로마노프 황가는 풍비박산 났다. 소련으로 암흑진화하였다. 조기에 전쟁을 끝냈기 때문에 승전국 취급도 못 받고 폴란드, 발트3국, 핀란드 등을 독립하고 루마니아에 베사라비아(몰도바)를 다시 할양한다.
* 이탈리아 - 오스트리아에게 트리에스테, 이스트리아 반도, 자다르, 쥐트티롤을 할양받고 지중해와 터키 쪽에 세력을 폈으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이탈리아인들의 인식은 이후 무솔리니의 집권과 제 2차 세계대전 참전 동력이 된다.]
* 세르비아 - 헝가리에게 세르비아인이 다수 거주하던 보이보디나 자치주를 할양받고 크로아티아인과 슬로베니아인과 합세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세웠다.
* 불가리아 - 세르비아에 일부 마케도니아 영토 할양, 그리스에 서트라키아 할양 (뇌이 조약)
* 오스만 제국 - 그리스에게 동트라키아 할양(콘스탄티노폴리스 제외), 서아르메니아 지역을 아르메니아에 할양, 오스만 제국 해체, 다양한 지방에 대한 강대국의 영향력 행사
* 일본 - 유럽 전장에 군수물자들을 공급하며 경제력을 키우고[* 일본의 도시화/공업화] 채권국이 됨.
* 폴란드 - 나라가 생겼다! 또한 14개조 원칙에 따라 폴란드에게 항구를 주기 위해 독일의 동프로이센이 월경지화되었고, 단치히 자유시가 생겼다.

독일 제국에 대한 조약인 베르사유 조약의 내용은 특히 가혹하기로 유명한데...

> 1871년 보불전쟁 승전으로 얻은 알자스-로렌을 프랑스에 재병합[* 알자스엔 철이 많다. 프랑스는 이 지역의 철광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한 강에 의한 자연국경의 형성 또한 필요해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사수에 필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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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에 포젠과 서프로이센 할양, '''단 독일계 인구가 많은 단치히는 자유시로 남길 것''', 슐레스비히를 덴마크에 할양, 벨기에에게 오이펜-말메디를 할양, '''자를란트와 라인란트(루르 포함)를 프랑스의 영향력 하에 둘 것'''[* 이후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 비무장지대화 -> 히틀러의 라인란트 군대 진주로 이어진다.][* 이렇게 영토를 잃어 이때부터 독일 국가 1절은 맞는 게 점점 없어졌다.]
> 
> '''20년 안에 1320억 마르크(330억 달러(!!!))를 금을 기준으로 배상'''
> 
> 징병 금지, 육군을 100000명으로 제한, 육군사관학교와 참모본부 폐지 
> 
> 무기 수출 및 수입 금지, 대포 5000문 양도
> 
> 해군은 15000명으로 제한 및 잠수함 보유 금지[*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학을 뗐다. 그러나 알다시피 나치 독일은 또 다시 유보트를...]
> 
> 공군 창설 금지

이외에서 수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독일군에 대한 내용은 어찌저찌 편법을 써서 회피했으나[* 같이 국제 왕따였던 소련과 협업해서 소련의 넓은 땅덩어리 어딘가에서 비밀스럽게 무기를 개발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편법이..], 너무 가혹했던 나머지 극단주의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위 조약 내용 중 '''볼드체'''로 적힌 곳은 독일인에게 매우 치욕스러운 내용이었으며, 게다가 배상금 문제로 인해 계속해서 돈을 찍어내자 초인플레이션이[* 이걸 잡아내고자 렌텐마르크를 발행하고 이후로 독일의 20년대 경제 기적이 일어나지만, 알다시피 1929년 미국발 경제 대공황 이후로 다시 뭐...]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독일을 끝장내지도 못했고 독일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지도 못한 협상국 측은 결국 한 명의 퓌러와 [[제2차 세계대전|크나큰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 영향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항공기 기술이 크게 발달하며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는 핵심 전력으로 자리잡는다. 또한 남성들이 전쟁에 나가며 여성의 권리가 확대되었는데, 실제로 여군이 하나 참전했다고도 전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국이 사라졌다는 점으로, 당대 유럽에는 이미 식민지 문제와 내부 소요사태 등으로 황제국이 하나씩 없어지고 있었다. 그 예로 프랑스의 완전한 공화국화, 포르투갈의 민주화 이후 이 전쟁이 터지자, 남아있던 4개의 제국인 독일, 합스부르크,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이 모두 공중분해되어 제국이 몰락한다.

또한 귀족의 문화가 많이 파괴됐다. 프랑스 혁명으로 구체제가 무너졌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구체제가 무너진 것이 아닌 귀족이 불법적으로 빼앗은 돈만 환수한 것일 뿐 대부분의 잔재는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귀족의 대가 정말로 끊겨버리자, 귀족계층 또한 몰락하기 시작했다.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유럽뿐만이 아닌 아시아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대표적으로 일본 제국의 지배를 받는 조선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났고 이에 중화민국에서는 5·4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 기타 ==
본래 이 전쟁은 세계 대전(World War)이었고 미국에서는 유럽 전쟁(Europe War)으로 불렀으나, [[제2차 세계대전|더 큰 전쟁]]이 터지고 나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어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 측 추축국 독일의 퓌러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두체 무솔리니는 모두 이 전쟁에서 참전했으며, 특히 히틀러의 경우 영국 장교 헨리 텐디가 그를 살려주었다는 도시전설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