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r29)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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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철학]]
==개요==
의식은 감각하거나 인식하는 모든 심리 작용을 말한다. 의식의 정확한 정의는 철학, 과학, 신학 분야에서 오랜 시간 논의되어지고 있는 주제이다.

==의식의 주체==
의식의 고전적 주체는 '나', 즉 자아이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의식의 주체인 자아의 존재를 절대적 진리, 즉 제 1공리로 보았다. 이는 데카르트의 문장,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자아를 의식의 주체가 아닌 의식의 결과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신경계에서 정보를 처리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의 통합 체계로써 자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외에 양자역학을 통해 의식을 설명하려는 시도 또한 존재한다. 이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과학자로는 로저 펜로즈가 있다.

==[[이다현(32기)]]의 견해==

본 문단은 [[이다현(32기)|이다현]]의 매우 상당히 주관적인 견해를 포함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 게 좋다.

이 문서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존재성을 사고 여부로 정의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벗어나기===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이다현(32기)|이다현]]을 오프라인에서 찾아오자 .--
물체는 물리적인 형을 말한다. 물리적 실상세계에서 형태로 구분되는 단위이다.
생물은 어떨까?
사실 이게 전부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결국 원소로써 구성된 물체일 뿐이다.
우리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생물의 5조건은 그저 어떤 물체들의 특징일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물은 그저 복잡한 무생물일 뿐이다.

생물이 사고하고, 자기인지를 하고, 학습하고, 세포의 구조를 가지고 적응 및 진화를 하고, 등등 이 모든 것은 그저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반응일 뿐이다.
생물은 어차피 정보를 신체에 저장한다.
신경절 간극의 거리라든지 수용체의 개수라든지 엔도좀 수라든지 막전위라든지 결합 확률이라든지
결국 정보가 신체에 각인되고 이 신체가 환경변화에 맞게 반응하는 과정이 중첩되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사고‘이다.

이 예시를 생각해보자.
내가 펜을 밀면, 펜이 '아 힘을 가하네, 움직여볼까?'하고 움직일까?
아니다. 그저 펜과 손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밀리는 것뿐이다.
마치 그것처럼 우리 신체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이 세포는 외부 환경변화에 대하여 ‘물리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며, 이 기작이 복잡한 것 뿐이다.
즉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 '사고', '본능' 뭐라 부르든 간에 이것은 그저 시냅스의 경로와 가중치 부여에 따라서 정보처리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물리적 현상일 뿐이다.

온도 상승 → 시냅스에 영향을 줌(기억), 이때 어떤 가중치를 넘으면 감정이 발생(감정)
--사실 이미 물체라는 것에서 생물체만의 ‘자유의지‘같이 무생물과 다른 점이 존재하지 않고 그저 정보처리시스템이 복잡하다. 라고 알아들을 수 있으나 처음부터 생물에 대해 어떤 특이성?이 있다고 굳게 믿어 반대되는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해봤자 듣지도 못하고 들을 생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한 것이다.--
즉 생물과 무생물은 그저 물체를 정보처리시스템의 복잡도를 기준으로 '특정 기준치를 넘으면 '세포의 구조'를 보이는 구나 정보처리 가중치 중에서 '진화', '번식의 본능'과 같은 상대적으로 큰 가중치가 생기는구나 같은 식으로 구분한 것뿐이다.
(그렇기에 생물의 무생물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마치 물질을 '입자성과 파동성 중 무엇이 강하냐'를 기준으로 입자와 파동으로 분류한 후 입자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짐에 신기해 하는 꼴이다.)

그러면 생물과 무생물이 그저 정보처리시스템의 복잡도 차이라면 어쨰서 생물만이 갖는 특이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정리하자면

지금의 '나'는 이 '펜'과 마찬가지로 물체일 뿐이다.

이를 좀 더 분석해보자.
생물만이 갖는 특이성은 '의식의 주체'라는 점이다.
다시 기존의 뇌과학이나 심리학에서의 용어를 빌려 사용하자면 '나', 즉 '감각'하고 '생각'하고 '명령'하는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의식은 앞에서 설명하였듯 정보처리과정일 뿐인데 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사실 당연하다.
우린 그냥 정보를 처리하는 알고리즘 그 자체인 것이다.
환경의 변화가 얼마나 크냐? 이 기작으로 옮겨야하는가? 역치에 도달했는가?와 같은 물리적 정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나'인 것이다.
아까의 펜을 생각해 보자.
이번엔 펜 입장에서 말이다.
누군가 밀어서 외부 환경이 변화했다.
그러면 펜의 표면을 구성하는 분자들이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파울리 배타 원리가 거시적으로 나타난 외력을 받고 다른 분자에 힘을 전달하며, 응력으로 형을 유지하면서 '밀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분자들의 정보처리과정을 보자.
'미니까 밀린다'가 맞지만 펜의 입장에서는 '밀었네? 아 지금 어떻지? 밀리자.' 같은 정보처리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존재, 즉 의식의 증거가 된다.
(앞의 내용과 상반되는 주장으로 보인다면 입자,파동 비유를 다시 떠올려보아라.)
펜이 '나는 최대정지마찰력보다 큰 힘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밀렸다.'라고 생각한다면, 옳지 못하다. 이는 그저 외력과 최대정지마찰력을 비교하고 이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자체에서 ‘외력이 최대정지마찰력보다 컸는가?'라는 사고가 이루어졌다는 착각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의 주체는 펜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이라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행위의 주체분석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겠다]
'자유의지가 없다!'라는 말은 우리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행동을 하는 '현상'을 '자유의지 :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생각과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를 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정의가 과학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행동을 하는 '현상'을 재정의해야한다.
나는 그저 이를 정보처리시스템의 '복잡도'로 해석할 뿐이다. 이는 내 주관적 판단이다.
의식은 그저 물리적 형인 '물체'의 정보처리 과정의 종합적인 결과일 뿐이고, 그 시스템 내부에서의 알고리즘이 곧 내 신체에 명령을 내리는, 의식의 주체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모든 물체는 정보처리시스템에 기반하여 현상이 나타나고, 이 시스템은 의식의 주체에 대응된다.

이제 ‘주체’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펜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인간이든 모두 정보처리 시스템이다, 기준을 나누어 보자는 것이다.
내 의견과 어느정도 합치하도록 정보처리 시스템의 복잡도에 따라 물체를 구분한 기준이 있다.

*I0 — 수동 물리 반응계
피드백/표상 없음. 외력→변형(머리카락이 흔들림, 펜이 굴러감). 주체 아님.

*I1 — 항상성 제어계(셋포인트 피드백)
간단한 폐루프·설정값 유지(체온/혈당·호르몬 음성되먹임, 바로리플렉스). “내 상태”의 표상은 희박, 정책 선택도 제한적. 원초적 제어.

*I2 — 반사/패턴 생성 국소정책계
척수 반사, 중추 패턴발생기(CPG)(보행/호흡), 간단한 내부상태와 규칙으로 정책 실행. 국소 자율성 있으나 전역 통합/메타 없음.

*I3 — 예측 제어계(모델 기반)
소뇌·전정–눈운동 등 전달계의 내부모형으로 오차를 선제 보정. 학습·적응은 강력하지만 자기모델/전역 방송은 제한.

*I4 — 가치 기반 정책선택계
기저핵–도파민 강화학습: 다양한 대안 중 가치·위험·불확실성으로 정책을 고름(주의·학습률 게이팅 포함). 의식 자체는 아니나 의지감의 핵심 동력.

*I5 — 전역 통합/접근 의식계(GNW/재귀 네트워크)
시각·기억·언어·의사결정에 한 번에 공유되는 '전역 작업공간' 상태를 형성. “지금 내가 보고/생각하는 것”이 이 레벨에서 등장.

*I6 — 메타인지·서사적 자아계
확신도/오류를 계산해 주의·학습률을 조절, 반사실 시뮬레이션으로 “다르게 했더라면?”을 시험, 자전적 기억과 엮어 ‘나’라는 서사를 유지.
--출처 : Chat GPT--

여기서의 '주체'는 지금까지의 정보처리시스템 그 자체를 뜻하는 '주체'가 아니라 특정 복잡도 이상의 주체를 의미한다.
위의 분류는 '인간 의식의 주체'를 '주체'라 정의하고 그 외 정보처리 시스템들을 기준에 따라 나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 이름이나 구분 기준이 아니라 저게 그저 '구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린 모두 그저 '물체'일 뿐이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다음으로 하고싶은 얘기는 '잠재표현'에 대해서이다.
이 이야기는 평소의 사색에서 유래되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을 보는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광원의 빛이 물체에 반사되어 우리의 시각세포를 자극하면 --신호 변환 과정은 자세히 모른다ㅎ--이것이 전기신호로 전환되어 신경세포의 막전위 변화를 통해 전달된다.
이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 즉 정보처리 시스템은 전기신호 단위의 정보를 처리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험은 전기신호를 기반으로 해야 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정말 우리 앞의 물체가 '보인다'라고 느낄 수 있을까?
이건 정보처리시스템이 처리하는 데이터가 말 그대로의 '시각정보'인 것이 아닌가?
이 의문점에 대해서 조사해본 결과 '잠재표현'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알 수 있었다.
대강 설명하자면, 잠재표현은 전기신호를 역추적해서 원래 데이터가 무엇이었는지 계산하고 이를 심상으로 띄우는 것이다.
다양한 감각신경으로 받은 전기신호를 다시 오각수준으로 치환하여,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주변을 그리고 주변의 소리를 위치에 맞게 치환하고 등의 과정을 거쳐서 이 물리적인 세계를 역추적하여 그리는 것을 '잠재표현'이라고 한다.
정말 엄청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를 역추적해서 원래의 신호가 무엇일지 판단하는 과정은 우리의 신체에 각인된 정보기반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받는 정보는 전부 감각기관 기반, 즉 경험을 통해서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신체는 반복되는 정보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다고 대충 유추해볼 수 있다. --자세한 설계과정은 니가 찾아봐라.--
이는 우리 신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같은 물리적 실체에 대하여 다른 잠재표현이 나타나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에 따른 색상이다.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냐에 따라서 다른 색깔로 보이는 그림들이 있다.
이 현상은 지금 전역작업공간과 장기기억에 대하여 변화값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대충 생각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제로 있는 물리적 세계에서 우리가 정보를 역추적해서 물리적 세계를 심상세계로써 구축하는 과정이 경험 기반이라는 것이다.
겉보기 깊이라는 물리적 개념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
겉보기 깊이는 우리 눈이 굴절을 통해서 전달된 빛 데이터가 직선으로 왔다고 잘못 역추적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빛 데이터는 대부분 직선으로 왔기 때문에 굴절에 대하여도 직선으로 잠재표현을 띄운다는게 현재 개념이다.
그러면 충분한 정보를 통해 이 빛이 굴절하여 온 빛이라는 것이 확정되었다면 우리는 겉보기 깊이가 아니라 실제 깊이로 계산하여서 잠재표현을 띄울까?
--이거에 관련된 실험계획서까지 자세하게 작성했지만 찾아보니 이미 관련 연구가 개많이 있었다;;;--
논문에 따르면 충분한 학습을 통해 굴절하여 빛이 들어왔다는 것이 정보처리시스템에게 높은 가중치의 데이터로 여겨진다면 잠재표현이 실제 깊이에 가깝게 나타난다.
연구 결과는 학습수준에 따른 깊이를 다룬 것이었는데 사실 매우 미세했다.
이는 이 전체적인 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정보처리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생긴 문제이다.
인간의 무지에 의해서 생긴 결과이다.
--정보처리시스템일뿐인 인간이 과학을 모른채로 철학을 하고, 정치를 모른 채로 시민이 되고, '생각' 없이 살아서 그런 거다. (여기서 생각은 지금까지 말한 정보처리과정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물체로써 소시민적 사고를 하지말자라는 그런 의미다.)--
--원숭이들--
나는 생각하며 사는 삶을 추구한다. 이는 나의 철학이다.
과학을 통해 철학을 분석하고
우리가 하나의 정보처리시스템으로서 어디에 신경절의 가중치를 둘 것인지
우리는 '명령'할 수 없다. '사고'할 수 없다.
우린 생각할 수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의 관성계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펜이 움직이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는 이유는 완벽한 외부자, 우리가 펜을 바라보는 입장으로 펜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보처리시스템인 펜도 낮은 자아계지만 의식의 주체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펜이 이를 알까?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신체를 향한 스스로의 명령, 의식이 사실 물리적 실체 기반의 자연스런 정보처리시스템인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가 명령한다고 느끼지, 우리가 하는 행동이 자연스런 결과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외부 관점에서 '의식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고의 대상 즉 의식의 주체를 향한 말이다.)
그렇다고 시스템 입장에서의 '명령'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마치 관성계를 바꿔 풀 때는 존재하지 않는 힘인 관성력을 고려해줘야 하듯 다른 관점에서, 시스템 내에서의 분석에서는 주체라는 허상을 세우지 않으면 기작이 불가능하다.
우린 우리 신체 내에서 살고 있다.
즉 우리는 명령하는 주체라는 개념에서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
--이해하는 것과 높은 가중치 수준의 정보로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탈원숭이 이론|해당 문서 참조]]--
그러면 하나의 인간으로써 우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물체로써 어떤 삶을 우린 살아야할까?
난 무엇을 해야 할까?
난 무엇을 해야 하나?
—
2025.09.04 작성

===분석하기===
기존의 복잡도에 따라 구분된 ’물체’개념을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을 기준으로 다시 나눠보자.
우리가 다루는 대상은 ‘정보처리시스템’이다. 우리가 ‘다룬다‘라고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내용을 알고 구분을 하는 과정에서 정의를 해야하기 때문에,--짜치지만-- 하나씩 따져보고 그 다음에 구분하여 정의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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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6 연구중

===확장하기===
지금까지의 본질적 탐구를 기반으로 몇 가지 확장된 생각을 해보자.

* 존재의 정의[* 존재는 다른 존재로 부터 정의되는가? 존재간 상호작용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가? 다른 존재를 정의함으로써 정의되는가?]
* 단일 존재와 외부계의 존재성 우위[* 내 의식이 끊기면, 내 존재가 뒤진 것인가 세상이 뒤진 것인가]
* 상호정의성을 지닌 존재 집합의 존재성[* 서로 의식하여 정의하는 존재들의 집합이 완전히 닫힌 계로써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는 ‘존재‘는 ’사고‘로부터. ’사고’는 ‘정보처리’이고, 정보처리는 정보가 입력되어야 가능한 것인가? 라는 의문가 입력될 정보가 물리적 실체세계 기반이라는 가정하에서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상호작용[* “인식한다.” 라고 볼 수 있다. 감각기관으로 인식하든, 파울리베타원리같이 ’장‘으로부터 기원된 상호작용으로 인식하든.]으로써 정의되는 것인가?’에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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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6 연구중
 
===적용하기===
본질적 분석으로부터 ‘이해‘[* 2차 탈원숭이를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탈원숭이 이론|해당 문서 참조]]]를 한 존재로써, 우린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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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6 연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