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의 복음서 (r1)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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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복음서==

'''BOBBY HENDERSON'''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그 말씀은 "으아아악!"이었노라.
—해적복음 13:7

==감사의 글==
신성한 메시지를 전파하는 일에는 수많은 이들의 엄청난 조율과 노력이 뒤따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희 웹사이트를 가꾸고 그분의 말씀이 온 누리에 퍼져나가도록 밤낮으로 지혜를 모아주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의 자비롭고 사려 깊은 노력 덕분에 우리는 함께 많은 것을 이뤄냈습니다. 물론, 우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예감이 들긴 하지만요.

저의 에이전트, Paula Balzer에게는 가장 순수한 감사를 바칩니다. 당신은 마치 위대한 해적 선장처럼, 때때로 거친 풍랑을 만나는 저를 용맹하고 꿋꿋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책은 Villard 출판팀의 흔들림 없는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Random House의 편집장 Daniel Menaker님의 지혜와 혜안, 그리고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Sanyu Dillon님과 Avideh Bashirrad님의 따뜻한 격려와 지지에 감사드리며, 특히 이 책이 멋지게 첫발을 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마케팅의 귀재께는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훌륭한 책을 만들어 주시고 수시로 해적다운 아이디어를 보태주신 Erich Schoeneweiss님께 감사드립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멋진 디자인을 선보여주신 Simon Sullivan님과 Gabe Levine님께도요.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끈기와 변함없는 헌신을 보여주신 Nancy Delia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술가이자 신사이며, 그 자체로 해적인 Tim Mak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의 편집자 Chris Schluep에게 가장 큰 감사를 돌립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은 애초에 이륙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저는 당신을 날스괴교의 공식 '파스타 총대주교'로 임명하는 바입니다.

라멘.

==목차==
감사의 글 vii
면책 조항 xi
Bobby Henderson이 보내는 편지 xiii

'''과학의 뻘짓''' 1
대안 이론이 필요한 이유 3
다른 관점에서 보기 6
새로운 슈퍼 사이언스를 향하여 11
진화론,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17
또 하나의 비전 30
날스괴 vs 지적설계, 기묘한 동맹 33
성찬식 테스트 38
통합 스파게티 이론 40
더 많은 증거 44
키위: 날지 못하는 새? 48

'''파스타파리안교 해설''' 49
압축 세계사 51
날스괴 교회사 주요 장면 57
Bobby가 중대 질문에 답하다 63
해적이라면 어찌할꼬? 67
거룩하신 면발님 70
이단 열전 80

'''프로파간다''' 91
파스타파리안 프로파간다 가이드 93
팸플릿 107
간지템 114
자금 조달 122
명절 안내 123
계몽 연구소 126

Bobby Henderson과 동료들이 전하는 마지막 말 165

==면책 조항==
파스타파리안교가 경험적 증거에 기반을 둔 유일한 종교이긴 하지만, 이 책 역시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눈썰미 좋은 독자라면 본문 곳곳에서 수많은 구멍과 모순을 발견할 것이고, 심지어는 대놓고 하는 거짓말과 허풍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는 독자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저희가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장치입니다.

'''난쟁이에 관한 면책 조항'''[* 때로는 '땅꼬마'나 '작은 친구들'로 불리기도 함.]
우리 종교는 그 어떤 집단도 차별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특히나 몸집이 아주 작은 분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그들을 화나게 했다간,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게 나타나 공격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음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작은 친구들 커뮤니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면, 이 책은 가급적 가장 높은 책장에 꽂아두시길 권장합니다.

==Bobby Henderson이 보내는 편지==
친구에게,
경이로운 종교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신앙의 시대입니다. 정치인들은 성전(聖戰)에 나서고, 나라들은 서로를 침략하며, 과학[* '뱀의 혀'라고도 알려짐.]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종교개혁 이래, 아니, 박해받던 군중이 미합중국이라는 거대한 민주주의 부흥회로 떠나기 위해 처음으로 뭉쳤던 그 시절 이래로 본 적 없는 새로운 종교적 기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정신에 발맞추어, 저희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날스괴) 교회는 여러분이 저희에 대해 좀 더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스트리퍼 공장과 거대한 맥주 화산이 있는 저희의 천국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직접 고른 의상, 즉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해적 복장을 갖춰 입은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정하신 휴일인 금요일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저희에 대해 몇 가지는 알아두셔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
* '''좋은 모든 것.'''

'''우리가 반대하는 것?'''
* '''좋지 않은 모든 것.'''

끝내주죠? 물론, 세상일이 다 그렇듯 그리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경전이 필요합니다. (어느 종교인들 경전이 없겠습니까?) 유대인에게는 성경(구'알'성서)이, 기독교인에게는 개정판(신'알'성서)이, 무슬림에게는 면봉인지 뭔지가, 자이나교도에게는 '딕과 제인'이, 수피교도에게는 '수피!'가, 불교도에게는 '바나나파다'가, 힌두교도에게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위카에게는 '이스트윅의 마녀들'이 있듯이 말입니다. 만약 이 글이 무슨 선언문이나 팸플릿, 길거리 전단지,

xiv* *Bobby Henderson이 보내는 편지

혹은 골목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광인의 외침이었다면, 현명한 독자 여러분은 날스괴교[* '파스타파리안교'라고도 함.]를 그저 그런 사이비 종교 중 하나로 치부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린 사이비가 아닙니다(굳이 따지자면 '부티크 종교'에 가깝죠). 그리고 이 책은, 문학적 세련미나 피비린내 나는 참수형, 내장을 헤집는 묘사는 부족할지언정, 적어도 그 어떤 경전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엄밀한 논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에 대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야말로 진정한 창조주이며, 날스괴교야말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일지 모른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자, 망설이지 마세요. 딱 30일만 저희와 함께해 보시죠. 만약 저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의 옛 종교는 아마도 당신을 다시 받아줄 겁니다. 삐치기 잘하는 자이나교만 아니라면요.

라멘.

BOBBY HENDERSON
예언자

==과학의 뻘짓==

교육의 본질은 사람들을
다양한 사상의 흐름에 접하게 하는 것이다.
—GEORGE W. BUSH, 숨겨진 파스타파리안

===대안 이론이 필요한 이유===
작금의 과학은 총체적 난국에 봉착했습니다. 과학계가 수년간 쉬쉬해 온 추악한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검증되지도 않은 수많은 이론들이 마치 확고한 사실인 양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수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인 덕에, 진실의 바람이 온 땅을 휩쓸고 있습니다.

진화론을 예로 들어봅시다. 지적설계론 지지자들은 진화론이나 지적설계론이나 둘 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기는 매한가지이므로, 자신들의 대안 이론 역시 진화론과 동등한 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성공적으로 주장해왔습니다. 이는 참으로 타당한 지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곤경에 처한 이론이 어디 진화론뿐이겠습니까.

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수많은 개념들이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진화론만이 "그저 이론일 뿐"이라며 손가락질당하는 것은 실로 기이한 일입니다. 진화론 교육에 대한 반발은 오히려 다음의 사실을 더욱 명백히 했을 뿐입니다: '''우리 어린 학생들에게 폭넓은 지성의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안 이론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적설계론 지지자들은 어떤 이론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가설이라도 다른 가설과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는 매우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중력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질량을 가진 입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 말입니다. 우리는 중력의 '현상'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정작 그 힘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입자들은 대체 왜 서로에게 끌리는 걸까요? 관련 문헌을 아무리 뒤져봐도 중력의 현상을 설명하는 자료는 넘쳐나지만, 이 인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는 연구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는 한, 학생들에게 궁극적으로는 그저 이론에 불과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일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중력 이론을 논해야 한다면, 그 어떤 가설도 증명되거나 반증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모든 가설에 동등한 발언권이 주어져야 마땅합니다. 이에, 저는 이 기묘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힘의 근원이 바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라는 가설을 공식적으로 제출하는 바입니다.

이 힘의 정체가 사실은 그분께서 당신의 국수 가락으로 우리를 지그시 누르고 계시기 때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그분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현존하는 어떤 장비로도 감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의 중력권이 아직 반증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 가설이 진실일 가능성을 더욱 높여줍니다. 그분의 깊은 뜻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토록 수고스러운 일을 하시는 데에는 분명 어떤 선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 논리적일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구를 벗어나 우주 미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실 수도 있고, 혹은 그저 우리를 만지는 것을 즐기시는 것일지도 모르죠.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난쟁이들이 날스괴님의 손길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그분의 눈에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이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경험적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지적설계론자들이 세운 선례를 기억하십시오. 대안 이론이 교과 과정에 포함되기 위해 굳이 관찰 가능하고 반복 가능한 증거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존 이론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중력 이론은 힘의 '현상'을 설명할 뿐, 그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날스괴 중력 이론이 동료 심사와 같은 불필요하고 관료적인 절차를 최소화하고, 하루빨리 정식 과학으로 인정받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중력의 진짜 원인, 즉 우리가 그분의 국수 가락에 눌리고 있다는 추가 증거를 찾기 위해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역사 기록만 들춰봐도 충분합니다. 2천 년 전 남성의 평균 신장은 약 160cm였지만, 오늘날에는 약 178cm에 달합니다. 이 정보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전 세계 인구 변화와 함께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인간은 마치 번식에 집착하는 종족처럼, 지난 수 세기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그 수가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직관과는 반대로, 인구가 적을수록 인간의 키가 작았고, 인구가 많을수록 키가 커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키가 영양 상태의 결과물이라는 통설을 따른다면, 1인당 식량 자원이 더 풍부했을 소규모 인구의 키가 더 커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그 반대입니다.] 이는 오직 날스괴 중력 이론의 관점에서만 설명이 가능합니다. 오늘날 지구에는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니,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국수 가락의 손길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를 아래로 누르는 힘이 약해졌고, 그 결과 우리의 키가 더 커진 것입니다.

앞으로 인구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날스괴의 압력에서 더욱 해방되어 계속해서 키가 자랄 것이라 능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만약 전 세계적인 역병이 돌아 인구가 급감한다면 우리의 평균 신장은 다시 줄어들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 기록을 통해서도 검증됩니다. 실제로 심각한 보건 위기를 겪은 지역의 주민들의 신장이 더 작다는 사실은 우리 이론의 타당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합니다.

날스괴 중력 이론이 반드시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이론은 건전한 과학적 토대 위에 세워졌으며, 다른 미검증 이론들과 함께 교과 과정에 포함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뉴턴주의로 알려진 현재의 중력 이론이 명백한 사실로 입증되기 전까지는, 마땅히 대안 이론도 함께 가르쳐야 합니다.

===대안적 관점===
Ferris P. Longshanks가 전하는 말: 카운티 보안관, 교육 위원, 우려하는 시민

솔직히 말해서, 동료 시민 여러분, 저는 대체 왜 이렇게 소란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지적설계가 진화론이나 다른 반쪽짜리 창조 이론보다 더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단지 사람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 그것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미국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맥도날드냐 버거킹이냐
타겟이냐 월마트냐
코카콜라냐 펩시냐

그리고 여기,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구세주 하나님이냐
지옥 불 속에서의 영원한 고통이냐

당신이 어느 편에 서든 상관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이니까요. 하지만 진정한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신성한 권리를 지지해야 마땅합니다. 아주 많은 선택지를 말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공산주의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대중이 지적설계에 대해 자유롭고 정직하게 토론할 기회조차 박탈하려 합니다. 지적설계는 독실한 침례교도부터 이지적인 NASCAR 팬까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명료하고 논리적인 과학 개념인데도 말입니다.

때때로 저는 이런 위선을 마주할 때면 그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루는 이 문제들은 논쟁적입니다. 우리가 아는 이 생명이 자비롭고 전지전능한 창조주(지적설계)에 의해 창조되었는지, 아니면 흔히 적자생존(진화)이라 불리는, 지배를 향한 무자비하고 맹목적인 투쟁의 산물인지에 대해서는 건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두 가지 판이하게 다른 창조 시나리오를 간단한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최신 평면 TV를 장만하고 싶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지적설계와 진화라는 두 가지 대립하는 이론에 따르면, TV를 손에 넣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Sony, Toshiba, Sharp 같은 기업의 '지적인 설계자'들이 새롭고 가격도 합리적인 42인치 고화질 평면 TV를 부지런히 만들어내고, 그것을 꼼꼼히 포장해서 당신이 구매할 수 있도록 가까운 월마트나 서킷 시티로 배송해준다고, 아주 합리적으로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2. 진흙, DNA, 그리고 잡다한 TV 부품들이 뒤섞인 원시 수프에서 새로운 평면 TV가 저절로 '진화'해 나오기를 수백만 년 동안 하염없이 기다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당신은 아마 웬 정체불명의 사내가 나무에서 튀어나와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을 죽이고 당신의 아내를 겁탈하기 전에, 그 축축한 늪지에서 새 TV를 건져내 당신의 집(아마도 동굴이겠죠)으로 끌고 가려 애써야 할 겁니다.

보시다시피, 두 이론 모두 우리 사회에 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느 한쪽 시나리오가 다른 쪽보다 더 타당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지적설계 쪽이 첫 번째 시나리오에 해당한다고 말씀드릴 뿐입니다.

공평을 기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진화(혹은 자연선택)는 당신의 아내가 나무 위에 사는 남자에게 겁탈당하는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겠군요. 두 이론 모두 나름의 고충이 따릅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당신의 삶에 더 와닿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한번 자문해 보십시오. 대체 누가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지적설계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대변해 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용감한 과학자 몇몇을 자랑스레 내세웁니다. 여러분은 TV에서 지적설계를 지지하는 이 챔피언들을 보셨을 겁니다 (그 TV가 기술자들이 설계해서 가게에서 사 온 물건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겠죠... 이것도 증거입니다). 이들이 행동주의 판사들, 좌파 언론, 그리고 어떤 Bobby Henderson이라는 작자에게 얼마나 악랄하게 공격당하는지도 목격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진화론을 지지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과학자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진화론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Darwin, Einstein, Carl Sagan, Stephen Jay Gould, Ernst Meyer 같은 이름들을... 이 나라 국민 95%는 들어본 적도 없는 과학자들을 댑니다. 이들이 모두 진화론을 지지했던 인물들이라면서요. 하지만 여러분은 이 소위 과학자라는 작자들이 대중 앞에서 자신들의 이론을 변호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겁니다. 왜일까요?
정답: '''그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

흠... 우연의 일치일까요? 죽은 과학자들에게나 의존해야 하는 신세라니 (제 말을 알아들으셨다면, 그들은 지금쯤 꽤나 후끈한 곳에 있겠죠), 진화론 진영이 내세우는 주장이란 게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지 의심이 들지 않습니까? 다음엔 또 누굴 데려올까요...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Aristotle(동성애자)이나 Ptolemy(한물간 인물)라도 불러올 셈입니까? 진화론자들의 전적을 보면, 그럴 날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제가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살아있는 판사들이 이 고도로 과학적인 토론의 장에 자신들의 법을 들이밀려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저는 잘 준비된 지적설계 과학자들이 머지않아 그 싸구려 로퍼 신은 좌파 행동주의 판사들을 벌벌 떨게 만들 것이라 장담합니다. 그 판사들은 동성 결혼이나 허가하는 데 더 어울리는 자들로, 대부분 늙고 판단력이 흐려 쉽게 혼란에 빠집니다. 그들의 말과 선언은 무시하십시오. 금방 지칠 테니까요.

좌파 언론 역시 이 주제에 끼어들었다가, 자신들이 그저 머리빨, 목소리빨로 과대평가된, 거시기는 작은 기상 캐스터 출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했을 뿐입니다. 이 마지막 주장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Stone Phillips를 보면 거의 확실하다고 봅니다. 언론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산불 시즌이 돌아오면 곧바로 관심을 잃을 테니까요.

죽은 과학자들, 행동주의 판사들, 그리고 좌파 언론 외에, 진화론자들을 대변하는 또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진화론을 옹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지적설계 운동을 조롱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태평양 북서부 출신으로 자신을 "Bobby Henderson"이라 칭하는 이 남자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제가 돌을 던질 입장은 아니지만, 그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들이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읽었는데, 그는 과학자도 아니라고 합니다. 또한, 아주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군 경력을 속였다고 합니다. 세 번이나 이혼했고 지하실에서 잠을 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 모든 소문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만약 우리가 이 중요한 토론을 이 거짓말쟁이 이혼남에, 어쩌면 밤에는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괴물일지도 모르는 자에게 맡겨야 한다면, 저는 오직 이 나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저의 원래 주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우리 인민에게는 선택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선택지가 필요하며, 과학자, 판사, Bobby Henderson, 그리고 언론으로 구성된 좌파 음모 집단이 우리에게서 이 선택권을 빼앗아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당신의 지역구 의원에게 편지를 써서 지적설계가 학교에서 가르쳐져야 한다고 요구하십시오. 당신의 종교 지도자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당신의 지역구 의원에게 편지를 쓰도록 요구하십시오.

만약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저는 언론이 대중의 분노라는 조절 장치를 무시한 채 자유롭게 활동하는 날이 올까 두렵습니다. 법은 통과되고 유지될 것이며, 오직 판사들만이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언론은 소환장의 위협 없이 뉴스를 보도할 것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신을 증오하는 공산당원들이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Bobby Henderson을 독재자로 임명할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새로운 초과학을 향하여===
우리는 지금 흥미진진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더 이상 과학이 자연적인 설명에만 국한되지 않는 시대 말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을 통제하는 초자연적인 힘—일각에서는 마법이라 부르는—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대중의 여론과 지방 정부에 힘입어, 과학은 자연적이든 초자연적이든 모든 논리적 이론을 빠르게 수용하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 이래로 우리는 이토록 개방적인 과학 정책을 본 적이 없습니다.

과학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어떤 이들은 그것을 현상에 대한 관찰적, 기술적, 실험적, 이론적 설명이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놀랍지 않게도, 초자연적 이론들은 세상에 대해 검증 가능한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에 설 자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소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좀 근시안적입니다. 과학은 또한 인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의 집합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초자연적—혹은 마법, 형이상학적, 비현실적, 뭐라 부르든—이론들은 우리가 지난 200년 동안 사용해 온 표준적인 자연-전용 과학보다 더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만큼 도움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 도구라는 비유를 더 확장해 본다면, 우리는 과학자들에게 가능한 가장 큰 도구 모음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도 그들이 특정 현상에 초자연적 설명을 적용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혹은 기만적인 정치적 목적에 편리할 때 초자연적인 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급진적인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사용된 햇수로 따지자면, 초자연적 과학—이름하여 초과학—이 전통적인 과학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전통적인, 즉 경험적 과학은 불과 수백 년 동안만 사용되어 왔습니다. 분명히 이 '경험 과학' 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초자연적 과학이 그토록 오래 지속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초자연적 과학이 경험적 과학보다 더 생산적일 수 있을까요?

새로운 땅의 발견과 개발을 생각해 봅시다. 이는 누구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중요한 과학적 추구입니다. 초자연적 과학이 표준이었던 시기—가령 서기 1400년부터 1600년까지—와 경험적 과학이 선호되었던 시기—가령 1800년부터 2000년까지—를 비교해 보면, 우리는 경험적 과학이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 명확한 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알 덴테.]

'''발견된 육지 면적'''

'''초자연적 과학'''
1400-1600년
1,450만 평방킬로미터

'''경험적 과학'''
1800-2000년
30만 평방킬로미터

여기서 경험적 과학은 온갖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을 드러냅니다. 위성 영상과 GPS 항법 장치를 갖추고 있음에도, 경험주의의 족쇄에 묶인 과학자들은 그들의 초자연적 과학 경쟁자들이 동일한 기간 동안 발견한 새로운 땅의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양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1400-1600년대의 과학자들과 탐험가들은 지도도 거의 없었고, 항해를 위한 나침반, 십자측, 아스트롤라베 정도만 있었으며, 동력 운송 수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400만 평방킬로미터가 넘는 새롭고 개발 가능한 땅을 발견해 냈습니다. 분명히 그들의 초자연적 힘에 대한 개방성이 그들의 성공과 관련이 있었으며, 우리는 그들이 어떤 존재—역사적 예술이 시사하듯이, 아마도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에 의해 이 새로운 땅으로 인도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의 균형 잡힌 방법—자연 이론과 초자연 이론 모두—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땅을 찾게 해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논리적일 뿐이며, 이는 우리의 증가하는 인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더 많은 땅은 더 많은 자원을 의미하고, 더 많은 자원은 굶주리는 아이들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저는 초자연적 이론을 과학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이들이 굶주리기를 원한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책 결정에 설 자리가 없음이 분명하므로, 저는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갖지 못하도록 제안합니다.

다음으로, 의학을 살펴보겠습니다. 과학이 초자연적인 것을 포함했던 중세 시대의 의학이 오늘날보다 우월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중세 의학은 종교에 의해 지배되었고, 그렇습니다, 질병은 일반적으로 죄에 대한 벌로 생각되었으며, 그래서 치료는 주로 기도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들을 불필요하게 만들 만큼 궁극적으로 성공적이었던 "구식" 의료 절차들을 잊지 맙시다.

환자의 몸에서 상당한 양의 피를 뽑아내는 사혈 요법은 오늘날의 소위 우월한 의사들에 의해 흉악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 절차가 현대 의학보다 더 많은 선을 행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중세 시대의 의료 문헌—라틴어에 대한 보통의 이해만 있어도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며, 우리는 그 타당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은 두통에서 암에 이르기까지 많은 질병이 우리에게 화가 난 악령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제 이러한 질병에 대한 많은 원인이 단지 영혼의 작용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문헌을 보면 그것들이 질병의 매우 중요한 원인이었음이 분명합니다—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원인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혈 요법이 소아마비가 고용량의 비타민 C로 치료된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이 질병의 영혼들을 완전히 물리칠 만큼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의하지 않는 분들께 묻겠습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악마에 의한 열병을 앓은 것이 언제였습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더 많은 질병이 있으며, 현대 의학 기술만으로는 그들 모두를 물리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의사들과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도구와 초자연적 원인뿐만 아니라 자연적 원인도 고려할 수 있는 유연성을 주는 것은 어떨까요? 간단한 사혈이나 거머리 부착으로 다른 질병, 심지어 악마에 의해 유발되지 않은 질병까지 치료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가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치료하는 기도의 힘을 믿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실행을 뒷받침하는 검증 가능한 증거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기도가 치유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하지만 이 기도들이 비최적의 방식으로 적용되어 그 효과에 대한 증거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진실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과학적 방법과 종교적 민감성이 이런 종류의 연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잘못된 신에게 기도하고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분을 불쾌하게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만약 간단한 안대나 해적 반다나를 착용함으로써, 기도하는 사람들이 날스괴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역사는 초자연적인 사건들의 예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가 오늘날 500년 전보다 어떻게든 더 지적이고 교육받았으며,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을 이해할 더 나은 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사건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제시한 설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녀들은 엄청난 수로 존재했고 너무 많은 문제를 일으켜서 그들을 사냥하고 수만 명을 불태워 죽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21세기이고, 수백 년이 지났으며, 마녀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 천년 전보다 확실히 덜 문제가 됩니다. 저는 마녀를 본 적도 없고, 하물며 한 명을 불태워 죽일 필요성을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초자연적 설명이 합리적이라는 지식을 갖춘 우리 조상들이 존재했던 모든 마녀를 모아 처리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마녀들이 어딘가에 숨어 복수를 계획하고, 방화 화합물을 몸에 자유롭게 바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다시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의 고귀하고 위대한 과학자들은 무엇을 할까요? 그들에게 계산기를 던질까요? 마녀는 계산기를 먹습니다. 과학계는 이 마녀들의 위협을 물리치는 데 무력할 것이며, 마녀들이 마법으로 우리에게 가하는 끔찍한 사건들에 대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만을 제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엄격한 경험적 방법과 기술적 진보를 거의 자랑스러워하듯이 찬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이 초자연적, 비경험적 과학이 새로운 땅의 발견, 악마를 유발하는 질병의 제거, 마녀의 멸종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줄 때, 우리의 방법을 재고하고 우리에게 '''실제 결과'''를 가져다준 것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가장 큰 아이러니는 인정된 과학의 영역에 초자연적 이론을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들이 실제로는 초자연적 이론이 과학적 연구의 정당한 분야임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경험적, 자연-전용 과학과 초자연적 과학이 나란히 공존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고, 사실, 그래야만 합니다. 지적설계는 현상에 대한 자연적 설명을 피할 수 있지만, 날스괴교는 자연과 초자연을 동등하게 활용합니다.

===진화론,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문제 조명하기'''

요즘 우리는 진화론에 대해 많이 듣습니다. 과학자들은 마치 그것이 과학계의 재림이라도 되는 양 이 주제를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우리가 원숭이, 개, 또는 그 무엇과 공유하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진화론의 안내 없이 그랬을 것보다 이 지구상의 우리 상황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믿어야 합니까? 진화론이 어떻게든 내 삶을 더 만족스럽게 만들어 줄까요? 진화론이 내 식탁에 음식을 올려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지구를 지구 온난화로부터 구할까요?

위의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은 큰 '아니오'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진화론은 잠수함의 방충망만큼이나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학자들은 진화론이 신뢰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저런 증거를 고안하느라 세월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이론'''에 불과한 한, 현실 세계의 누구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거대하고 나쁜 과학자들이 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제 나름의 반박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진화란 다양한 내적 및 외적 선택 압력의 결과로 장기간에 걸쳐 종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먼지처럼 늙으신 제 할아버지는 그것을 겪으셨습니다. 초기 석판화에 따르면, 그는 젊었을 때 꽤나 멋쟁이였지만, 지금은 한 세기가 지난 후, 과음과 광산에서의 고된 노동 끝에 머리카락도 없고 똥처럼 보입니다. 진화란 단지 늙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 저는 이 질문을 과학자 친구에게 던졌고, 그는 그 변화가 여러 세대에 걸쳐 일어나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진화론자들이 처음부터 그것을 명시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저는 제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진화는 여전히 저에게는 늙어가는 것처럼 들리며, 저는 진화 과학자들이 처음 그들의 엉뚱한 아이디어를 얻은 곳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흔한 혼란을 해결했으니, 이제 진화의 제안된 선택력, 즉 '''자연 선택'''으로 넘어가 봅시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이란 말입니까? 부자연스러운 선택도 있습니까? 그리고 누가 선택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 질문들 중 어느 것도 제 과학자 친구가 대답할 수 없었고, 그래서 저는 이제 제 전 친구를 버리고 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제 능력껏, 제가 진화와 자연 선택에 대해 밝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 선택에 대한 더 자세한 고찰'''

분명히, 선택에는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자연 선택과 성 선택입니다. 두 번째 "섹시한" 형태의 선택에 대해서는 제가 첫 번째 것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때까지 잠시 숙고하도록 놔두겠습니다. 제 증명을 읽는 동안 자위할 시간이 있을 겁니다, 만약 그게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신다윈주의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진화적 변화는 자연 선택에 기인합니다. 즉, 환경에 더 잘 맞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덜 적응적인 유전자를 가진 개체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남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나은 "적합도"[* "적합도"는 개체가 환경에 얼마나 잘 "맞는지"를 의미함.]를 가진 개체가 다음 세대에 더 많은 유전자를 전달하기 때문에, 이러한 더 적응적인 특성은 확산되어 전체 인구의 유전적 구성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이 오리너구리, 펭귄, 그리고 푸들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것이며, 이는 우리로 하여금 과학자들이 완전히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게 합니다. 만약 누군가 "오리 부리"의 적응적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들은 분명히 왜 오리너구리가 부리를 가진 유일한 포유류인지 말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리너구리들(pusses... 누가 알겠어?)은 지역 오리 개체군에 아첨하는 데 관심이 있는 걸까요? 그들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대체 왜 그들은 부리를 가지고 있는 겁니까?

저는 오리너구리에 관해서는 과학자들을 봐주겠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이 우스꽝스러운 생물의 진화적 중요성에 대한 무의미한 연구로 종신 재직권을 얻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제가 생각해 낸 대안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오리너구리에 대한 논의를 마치겠습니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은 과학자들과 달리 유머 감각이 있기 때문에 오리너구리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온 뜻밖의 징표이며, 누군가 제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이 제 이론입니다.

다음에는 자연 선택의 더 평범하고 지루한 예로 넘어가, 그것을 리본처럼 잘라버릴 것입니다. 박테리아의 흥미로운 경우를 살펴봅시다. 항생제가 박테리아에 의해 유발되는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박테리아(예: 포도상구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변태이며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라틴어 용어를 사용합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포도상구균은 "파워 페니스"를 의미합니다.]이 결국 이러한 항생제에 대한 면역성을 발달시킨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포도상구균의 경우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1929년에 Alexander Fleming 경[* Elton John 경과는 관계없음.]이 페니실리움[* "많은 작은 페니스들"을 의미함.] 곰팡이에 오염된 한천 배지에서 포도상구균 박테리아가 억제되는 것을 처음 관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lexander Fleming 경, 또는 여왕이 그를 부르기를 좋아했던 "F-맨"은 페니실린을 만들기 위해 페니실리움을 분리했고, 그것은 그 후 주로 성병과 같은 많은 질병에 대한 기적의 약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자연 형태의 페니실린은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박테리아가—시알리스 공장의 친칠라보다 더 빨리 복제하는—결국 자연적으로 형성된 페니실린에 내성이 있는 균주를 발달시켰고, 자연 선택 과정이 이 내성 균주를 자연에 번식시켰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며, 저는 즉시 그것을 박살낼 것입니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박테리아, DDT에 내성이 생기는 곤충, 또는 항바이러스 약물에 내성이 생기는 HIV를 보면, 우리는 "자연 선택"과 "내성" 사이에 흥미로운 상관관계를 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정말로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저는 그들이 유전적 구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더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 집에 가서 당신이 이틀 연속으로 똥 샌드위치를 준다면, 저는 셋째 날에는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을 겁니다. 그렇게 간단합니다. 그들의 커다란 남근 모양의 박테리아 이름으로, 과학자들이 당신에게 다른 말을 하도록 놔두지 마십시오. 그들은 그들이 소위 하등 생물 형태를 비하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이 주장하는 만큼 똑똑하지 않습니다.

자연 선택의 또 다른 예는 이 강아지를 잠자리에 들게 해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자신만의 특정한 선택력을 제공함으로써 자연의 힘을 모방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인위적 선택"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식물과 동물의 "육종가"들의 행동에서 계속해서 봅니다. 그들은 식물과 동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개의 다양한 품종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모든 개 종이 공통된 하나의 근원, 즉 조상 늑대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이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우리는 인간 자신이 치와와, 닥스훈트, 푸들, 그리고 불독과 같은 네발 달린 짐승들을 포함한 다양한 종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태초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이 "육종" 신화는 반-지적설계 운동가들에 의해 제시된 선전의 한 형태인 것 같습니다. 비록 저는 지적설계에 대한 어떤 대화도 나중 장을 위해 남겨둘 것이지만 말입니다. 모든 품종이 목적을 '''섬기기''' 위해 이 행성에 놓였다는 것이 일반 관찰자에게 명백할 때,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그런 주장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개들의 창조주로 날스괴를 지목할 것입니다. 비록 신(만약 그가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된다면)이 그들의 창조에 손을 댔을지도 모른다는 타당한 증거가 있지만 말입니다. 결국, 독일 셰퍼드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쩌면 그들 자신의 "조상"인 늑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닐까요?[* Jack London의 다양한 이야기를 보시오.] 푸들과 치와와가 우리 자신에 대해 더 기분 좋게 느끼게 하기 위해 이 땅에 놓인 것이 아닐까요? 지적인 창조주가 인간을 섬기기 위해 지구상의 모든 종을 놓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진화는 1800년대 후반까지 제대로 발명되지도 않았습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다이어 울프로부터 얻기에 충분한 시간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주장을 믿지 않는다면, 식물 종에 관한 이 마지막 예를 고려해 보십시오. 우리가 가정용 양배추, 브로콜리, 케일, 콜리플라워, 그리고 방울양배추를 본다면, 비록 그것들이 공통된 고대 야생 양배추에서 유래했다 하더라도,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선택이 지난 수천 년 동안 더 잘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해야 할까요? 대답은 입에 방울양배추를 물고 있는 모든 아이의 찡그린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 진화에 대한 또 다른 타격입니다.

'''퍽이나 백만 년이겠다...'''

===해적에서 인간으로===
진화론을 논하다 보면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인류는 우리가 기억하는 한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은 우리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겁니다. 그들은 인간과 침팬지가 약 5백만 년 전에 공통 조상을 가졌으며, 우리가 그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기'하여 결국 우주 왕복선을 발명하는 동안, 침팬지는 고작 '막대기'나 발명할 수 있었을 뿐이라고 말이죠. 이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우리가 침팬지와 95%의 DNA를 공유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적과 99.9%의 DNA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어떨까요?[* 생물학 교과서에서 이 사실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 저는 매우 수상쩍습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누가 더 그럴듯한 공통 조상입니까? 그리고 해적이야말로 날스괴께서 선택하신 민족이 아니겠습니까? 날스괴께서 바로 우리 코앞에서 당신의 국수 가락을 흔들고 계시는데도, 왜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그토록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저는 조금만 더 참고 나아가, 인체를 탐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그 기능을 잃어 쓸모없어졌다고 여겨지는 '흔적' 기관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더 신빙성 있는 이론.'''

'''사랑니'''
'''궤변:''' 성인이 되어서야 돋아나는 이 치아는, 제대로 된 치아 관리를 받기 전이라 스물 중반이면 이미 많은 치아를 잃었을 초기 인류에게 추가적인 맷돌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랑니는 미국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유용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실:''' 우리의 해적 조상들이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더 거칠고 남자다운 식사를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또한, 그들은 칼을 입안 깊숙이 물고 다니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Robert Louis Stevenson의 '보물섬'을 보라.] 그렇다면, 그들에게 여분의 치아가 필요했다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남성의 젖꼭지'''
'''궤변:''' 과학자들은 석기 시대에는 모든 인간이 가슴—혹은 '젖통'—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진실:''' 남성의 젖꼭지는 해적들이 휴대용 기상 관측소로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젖꼭지로 무역풍의 방향을 알아내고, 젖꼭지가 선 정도에 따라 바깥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를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북동풍이 불어오겠는걸.'"

'''닭살'''
'''궤변:''' 진화론 선전가들은 닭살이 감정적이든 날씨 때문이든 곤경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이제는 쓸모없어진 격세유전적 반응이라고 당신을 믿게 만들려 할 것입니다. 이는 초기 조상들의 털을 곤두세워 몸집이 더 커 보이고 무섭게 보이게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진실:''' 닭살은 해적이 차가운 물에 빠졌을 때 부력을 높여주도록 교묘하게 위장된 기능입니다. 단순히 돋아나는 것만으로 표면적을 넓혀 부력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이 덕분에 해적들은 물에 더 잘 뜰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배도 없이 지내야 했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기능이었죠. 물론, 닭살이 흔적 반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변한 것은 사회입니다.

'''충수(맹장)'''
'''궤변:'''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소화하기 힘든 식물성 식단을 발효시키는 데 사용했던 내부 주머니의 흔적입니다.
'''진실:''' 충수는 해적의 금화를 숨기는 데 활용되었던 영리한 내부 주머니였습니다. 또한 해적들이 패배한 해적들에게 배를 점령한 후 요구하곤 했던 "내놔(cough it up)"라는 말의 유래이기도 합니다.

'''꼬리뼈'''
'''궤변:''' 진화론자들은 아무런 기록된 용도가 없는 꼬리뼈가, 한때 조상의 꼬리를 형성했을지도 모르는 더 큰 뼈 성장의 기이한 흔적이며, 다른 영장류의 기능적인 꼬리와 상동 기관이라고 주장합니다.
'''진실:''' 꼬리를 가진 인간이라니... 과학자들 제정신입니까? 꼬리뼈가 다른 목적을 수행했을 수는 없을까요? 저는 이 문제를 신중하게 연구했고, 꼬리뼈를 동물의 다른 특이한 뼈 성장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헌들은 저를 하나의 압도적인 결론으로 이끌었습니다. 많은 동물이 머리에 뿔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은 더 큰 뼈 성장의 흔적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꼬리뼈와 달리 뿔은 오늘날에도 목적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꼬리뼈의 원래 목적이 오늘날의 문화에 의해 쓸모없어졌다면 어떨까요? 꼬리뼈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뼈 성장이 뿔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뿔은 많은 동물이 싸우는 데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저는 꼬리뼈가 조상의 꼬리의 흔적이 아니라, 오히려 효과적이지만 이상하게 배치된 방어 및 전투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두 명의 상대가 여자나 좋은 동굴 부동산을 두고 싸울 때, 엘크가 뿔로 싸우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게, 엉덩이를 쭉 뻗은 채 서로에게 뒤로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저는 이것을 '엉덩이 싸움'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말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필요한 것—아마도 음식이나 돌—을 운반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꼬리뼈가 전투 기능이라는 것과 그 사용법에 대한 지식이 수년간 문화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추가 증거로, 당신이 누군가에게 뒤로, 엉덩이를 먼저 내밀고 달려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빨리 도망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이 가설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시험해보고, 다음 며칠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엉덩이를 들이받으라고 제안합니다.[* 여성들은 변태적인 남자들 앞에서 이것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 표적들의 대부분, 아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두려워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다른 설명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잠재의식적으로 꼬리뼈가 흔적 꼬리가 아니라 무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또 다른 흔적 기관'''
'''궤변:''' 인간 게놈은 우리 인간이 무(無)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니힐로(Nihilos)는 도리토스의 초기 전신인 고대 로마의 스낵 식품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용어는 "도리토스로부터"로 번역됩니다.], 다른 모든 동물들처럼 체계적으로 진화해야 했다는 증거를 제공합니다. 증거로, 과학자들은 우리 조상 중 일부에게는 기능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은 많은 비활성 "유사 유전자"를 포함하여 기능이 없는 DNA를 많이 지적합니다. 자주 인용되는 한 예는 비타민 C 합성의 경우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영장류는 비타민 C 합성을 담당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그 유전자는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 가족의 모든 구성원에서 비활성 상태입니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우리의 공유된 혈통의 증거로 지적하지만, 저는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진실:''' 우리의 조상인 해적들은 열대 지방에 살면서 과일을 많이 먹었습니다.

'''진화, 섹시해지다'''
마지막으로, 제가 얼마 전에 약속했던 "성 선택"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성 선택의 기본 개념은 종의 한 성별, 보통 암컷이 특정 기준에 따라 이성과 교미할 상대를 적극적으로 선택하여[* 젠장.] 종 전체에 선택적 압력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성 선택은 수컷 새의 밝은 깃털, 수컷 숫양, 사슴, 엘크 및 기타 유제류[* 숫양, 사슴, 엘크 등.] 사이의 인상적인 의식적 결투, 그리고 키 작고 못생긴 남자들이 모는 허머의 높은 비율을 설명합니다. 요컨대, 성 선택은 동성 내 다른 개체에 비해 특정 개체의 성공에 달려있는 반면, 자연 선택은 성별에 특정적이지 않습니다. 현대성의 이익을 위해, 저는 의회가 이 후진적이고 성차별적인 관행을 불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스파게디티'''
제가 이 페이지들을 통해 진화론을 본질적으로 박살냈지만, 신뢰할 만한 진화적 증거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석 기록은 아무도 반박할 수 없으며,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종의 명확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줍니다 (비록 답답한 공백이 있지만—그리고 제가 묻습니다, 누가 그것들을 거기에 놓았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세상에는 실제로 선택적인 힘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술 취한 사람들이 길에 나와 차에 치일 때처럼 말입니다.[* 또한, George W. Bush는 침팬지와 현저한 유사성을 보입니다.]
우리는 진화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그분의 국수 가락에 의해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스파게디티는 극도로 겸손하십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분은 우리가 진화가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우리 기원에서 해적의 두드러진 역할을 가리고, 원숭이를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게 만들고, 일반적으로 배후에 머물며 스포트라이트를 피하셨습니다.
그분의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가 획기적인 종교일 뿐만 아니라, 확고한 과학에 의해 뒷받침되어 아마도 인류 역사상 제시된 가장 의심할 여지없이 진실된 이론이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저는 현대의 지구 온난화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해적들은 그분이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1800년대 이후로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구 온난화, 지진, 허리케인 및 기타 자연재해가 해적 수의 감소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임을 발견합니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저는 최근 연구에서 나온 다음과 같은 잘 알려진 그래프를 포함시켰습니다:

'''전 세계 평균 기온 대 해적 수'''

보시다시피, 해적과 지구 온도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역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물론 모든 상관관계가 인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적설계 지지자들에 관한 이 겉보기 상관관계를 보십시오:

'''믿음에 대한 산점도'''

지적설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반 인구보다 지능 지수가 낮고, 지적설계의 아이디어를 압도적으로 거부하는 과학자들보다 상당히 낮은 IQ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Henderson, 2005.]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단지 이상한 우연의 일치일 뿐이며, 지적설계 신봉자들이 데이터가 암시하는 것처럼 반드시 지체 장애인은 아니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우리의 진정한 기원에 대해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이 우연의 일치를 제자리에 놓았을 가능성이 전적으로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날스괴 vs 타 종교===
지적설계 지지자들과의 대화는, 아무리 짧고 허황되더라도, 필연적으로 우리를 신과 종교에 대한 토론으로 이끌게 됩니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가 평화로운 종교—아마도 그들 모두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제안을 탐구하기 위해, 역사 전반에 걸친 종교와 폭력, 특히 전쟁과 죽음에 관해 살펴봅시다.

기독교는 십자군, 종교 재판, 다양한 피비린내 나는 반란, 정복자들... 목록은 거의 끝이 없어 보이는, 종교계의 람보처럼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매혹적이고 요다 같은 방식으로 "그러나 나를 왕으로 삼기를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말했을 때[* 누가복음 19:27.], 사람들은 그를 꽤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유대인[* 어떤 사람들을 믿는다면, 예수를 해치운 사람들.]과 무슬림들도 스스로 잘 해내지 못했고,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중국에서 싸우는 불교도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증거를 대충 훑어보면, 우리는 종교가 꽤 무섭고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반면에, 날스괴교로 인한 사망에 대한 증거는 전혀 없으며, 이는 가장 낮은 사망률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날스괴교가 가장 평화로운 종교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제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및 기타 종교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많은지 보십시오. 사람들은 어떤 성서를 따라야 할지와 같은 간단한 것들에 대해 결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친구와 국가 간에 논쟁이 있고, 다양한 종교에 대한 수만 권의 책이 있으며, 모두 구멍을 뚫고, 어떤 신을 숭배해야 하는지(힌두교), 어떤 고대 예언자의 사촌을 지지해야 하는지(이슬람)에 대해 지껄입니다. 엉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이론에 구멍을 뚫기 위해 쓰인 책이 정확히, 세어보세요, 한 권도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학문적 비판조차 없고, 오직 학문적 지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모든 것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날스괴교가 아마도 사실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종교들이 "도그마"에 많은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는 그들이 모든 의심을 넘어 옳다고 말하는 방식입니다. 가장 독실한 파스타파리안조차도 이 생각에 머리를 긁적이며 안대를 불안하게 고쳐 맬 것입니다. 도그마는 무언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의미하며,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전지전능해야 합니다.[* 멋지긴 하겠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들 주위에서 당신을 약간 불편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스괴 신자들은 도그마를 거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옳다고 믿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단지 새로운 증거나 오래된 증거에 대한 더 큰 이해에 기초하여 우리의 믿음을 바꿀 권리를 유보할 뿐입니다. 우리의 도그마 거부는 너무나 강해서, 우리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전혀 없다는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우리가 극도로 개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언젠가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단지 그의 부재에 대한 증거뿐입니다.
'''화석 기록은 그분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은 단지 어디를 봐야 할지 알기만 하면 됩니다.'''

===또 하나의 비전===
Peter J. Snodgrass 박사와 이맘 Perezjaffari의 메모

'''제목:''' 그다지 지적이지 않은 세상에서의 비지적 설계에 관하여

전쟁, 기근, 역병, 설사, 그리고 Celine Dion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우리의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완벽하게 무결한 존재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창조의 근원이 실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날스괴)이었으며, 그분께서 우리를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신비롭고 모호한 단서들을 남기셨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예를 들어, 진화가 그럴듯해 보이게 만드는 것.], 우리는 날스괴께서 우리가 아는 생명의 청사진을 처음 놓으실 때 부주의했거나, 잔인했거나, 술에 취했거나, 심지어는 약에 취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동식물 종의 99.9%가 멸종한 것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Deuce Bigalow 영화가 한 편도 아니고 두 편이나 개봉한 것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화산, 쓰나미, 허리케인, 토네이도, 그리고 망한 성형수술을 허용한 창조주의 지혜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소수의 제한된 과학자 및 종교 지도자 집단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쌓여감에 따라, 우리는 단 하나의 부인할 수 없는 이론만을 제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창조주, 날스괴는 그다지 똑똑하지 않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진술은 특히 자비롭고 전지전능한 창조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병치될 때, 미묘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판단의 수많은 예는 존재합니다. Ben Affleck이 J.Lo와 Alias의 그 섹시한 배우 둘 다와 잠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허용되는 반면, Matt Damon은 자신의 조수와 데이트해야만 하는 덴마크에는 분명히 뭔가 썩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칙을 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가 "비지성적 설계(Unintelligent Design, UD)"의 결과라는 우리의 믿음을 이에 선언하는 바입니다.

사회 과학은 제쳐두고,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물리 과학으로 눈을 돌릴 수 있습니다.[* Patel의 역설: S. Patel 박사는 허블 상수가 측정 가능하고 중요한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를 드러낸다고 지적합니다. 그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주차 공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자비롭고 국수 같으신 주님께서는 왜 대량 빈곤, 암, 지구 온난화, 그리고 핵 확산을 근절하기 시작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그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열풍을 다시 일으키느라 너무 바쁘신 걸까요?

이 논문이 학술 논문의 일반적인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애초에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이것은 과학자와 종교 지도자가 공동으로 작성한 저작물입니다. 만약 과학과 종교가 상호 무판단 속에서 공존하려면, 양측의 이익을 고려하는 새로운 대화 모델이 필요합니다. 종교인들은 숫자를 그다지 "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데이트를 할 수 없고 실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단서가 없습니다. 다른 종류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성경 광신자"와 "천재" 모두에게 어필하고자 합니다. 단지 그 별명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벌써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는 모든 것에서 지성을 증명하려고 너무 많은 자원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그냥 수건을 던지고,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의 창조주가 멍청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비지성적 설계의 예'''

1. '''도도새.''' 이 새의 순진하고 유순한 성질에 감탄한 포르투갈 선원들은 그것에게 "단순한 녀석"을 의미하는 도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불행히도, 도도새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경쟁할 수 없었고, 곧 포르투갈 선원의 길을 따랐습니다.[* 아마도 초창기 원주민 닷컴 붐에 의해 야기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2. '''나그네비둘기.''' 한때 북미에서 가장 개체 수가 많았던 새였던 나그네비둘기의 종말은 1900년대 초와 맥도날드의 매우 인기 있었지만 단명했던 "맥피진 샌위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3. '''아일랜드 엘크.''' 전적으로 아일랜드산도 아니고 엘크도 아니었던(실제로는 큰 사슴이었습니다), 이 종의 수컷은 뿔의 크기에 따라 짝을 유인했습니다: 뿔이 클수록 수컷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멋진 뿔"에 대한 선택적 압력이 증가함에 따라, 수컷의 머리는 너무 무거워져서 당시 북유럽으로 이동하던 큰 포식자들[* 검치호랑이, 독일인 등.]에게 쉬운 먹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덜 인상적인 수컷들은 그냥 술에 취해 죽었습니다.
4. '''라마.''' 일반적인 라마는 젖이나 알을 생산할 수 없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 이름조차 제대로 쓸 수 없습니다.
5. '''충수(맹장).''' 한때는 가치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완전히 쓸모없습니다.[* 책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왜 남아있는지 아무도 정말로 모르지만, 일부는 금화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발견되었습니다.
6. '''종교 전쟁.''' 누군가는 종교 전쟁을 "최고의 보이지 않는 친구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우리는 동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7. '''디스코.''' 과학자들은 여전히 이 댄스 열풍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날스괴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목록에 오릅니다.
8. '''마카레나.''' 실화: Retardo라는 이름의 남자가 발명했습니다.
9. '''자자 빙크스.''' 그는 그냥 멍청합니다.
10. '''오리너구리.''' 질문: 어떤 창조주가 오리와 사향쥐를 결합할까요? 대답: 지적인 창조주는 아닙니다.

===날스괴 vs 지적설계, 기묘한 동맹===

'''논란의 핵심: 동료 심사'''

사람들이 과학을 가지고 정치질을 하고 있습니다. 지적설계, 즉 ID 지지자들은 교육 관료와 정책 입안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들의 견해가 "과학"으로서 이 나라 학생들에게 가르쳐지도록 하려는 노골적인 시도를 해왔습니다. 과학계의 99%가 진화론을 지지하며 표면적으로는 ID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ID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이 대중에게 직접 전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방향 감각을 잃은 고등학교 생물학도들이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아래 차트 참조.]

이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동료 과학자들에게 검토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 과정은 "동료 심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을 걸러내어 과학을 순수하게 유지하고 논란으로부터 영구적으로 안전하게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동료 심사"가 좋은 생각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자신의 의견을 동료에게 묻는 것이 잘못된 길은 아닐까요?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나 이 블라우스/드레스/파카 입으면 뚱뚱해 보여?"라고 묻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어떤 옷을 입고 있든 상관없이,

'''전국 "평균적인" 고등학교 생물학도 단면 설문조사'''

'''진화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멋져요" 7%
"끝내줘요" 8%
"멍청해요" 14%
"새 밴드 이름인가요?" 8%
"#2 연필이 없었어요" 62%
"잤어요" 1%

그 대답은 모든 시험 사례의 99.99%에서 "아니, 멋져 보여"라는 우렁찬 대답일 것입니다.[* '예'라고 답한 외로운 0.01%는 바보, 멍청이, 또는 "끝내준다"는 속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남고생들로부터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매우 비밀스러운 "동료 심사" 시스템이 과학자들과 그들의 친한 친구들의 제한된 관점을 강화하기 위해 불공평하게 고안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자들이 친구가 없다는 믿음은 오해입니다. 그들은 다른 과학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때로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과도 어울리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면, 우리는 오늘날 ID에 대해 전혀 논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당신은 그런 편협함과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대한 생생한 증오를 찾으려면 세일럼 마녀 재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위노나 라이더가 자신의 가게 절도를 가리기 위해 몇몇 소녀들이 "옛 가게에서 사탄의 마법을 부렸다"고 고발하는 영화 '크루서블'(20세기 폭스, 1996)을 보시오.] 하지만 용감한 교육 위원회 위원들—거의 모두가 과학적 배경이 없고, 어떤 경우에는 교육 수준이 매우 낮은—은 현 시스템이 불공평하다고 선언했습니다. 마녀들의 용기로, 그들은 감히 앞으로 나아가 과학을 재정의했고, 우리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는 그들 편에 서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자를 링 안으로 던집니다:

'''우리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지적 설계 이론의 배후에 있으며, 그의 국수 가락으로 교묘하게 논쟁을 조종하고 있다는 놀라운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만약 우리가 지적설계 지지자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ID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진화에 대한 과학적 대안이라는—그렇다면 ID 지지자들의 종교적 배경은 일반 대중의 그것을 면밀히 반영해야 합니다. 그러나 데이터를 보면, 우리는 기대했던 결과를 보지 못합니다. 대신, 우리는 주요 ID 지지자들의 95%가 복음주의 기독교인, 즉 EC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남부에서조차 그렇게 높은 밀도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 거의 1:1 비율의 ID 대 EC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0.001%라고 추정합니다. 다시 한번, ID가 종교가 아닌 과학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다른 추론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ID 지지자들은 설계자의 정체를 밝히라는 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피하면서, 세속적인 언어로 자신들의 주장을 진술하는 데 극도로 신중합니다. ID를 보면 창조주가 존재해야 함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ID 지지자들은 그 창조주가 누구인지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만약 기독교의 신이라면, 왜 그것을 언급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이것이 적어도 어딘가에 명시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설계자가 기독교의 신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논란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걸까요?

분명히, 날스괴가 그 배후에 있습니다. 비기독교적이고 비종교적인 ID 이론을 구독하도록 균일하게 종교적인 사람들의 집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누가 있겠습니까? 날스괴는 바로 이런 종류의 장난기 많은 개입으로 악명이 높으며, 따라서 우리가 생각해 볼 때 말이 되는 ID 운동의 배후에 날스괴가 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박 불가능한 증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 중 일부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최선을 다했고, 그의 글은 그 이후로 대학 신입생들을 혼란스럽게 해왔습니다. 쿠르트 괴델은 상형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증명을 사용했습니다. 불행히도, 아무도 더 이상 상형 문자를 읽을 수 없어서, 우리는 그가 성공했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ID도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기록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ID는 과학의 요구 사항인 자체 가설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한 과학적 이론으로 간주될 수 없습니다.[* 창조주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그냥 말하는 것은, 당신이 창조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을 때,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계가 지적설계 이론에 회의적인 데에는 좋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ID 지지자들은 과학자들 편에 오류나 음모가 있다고 정당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음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음모는 있습니다.

'''괴델의 신 증명: 완전히 읽을 수 없음.'''

진실은 날스괴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탈리아식 빵 부스러기 같은 단서들을 남겨 우리에게 그분의 영원한 국수다움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우리 언어 속에 계십니다—누군가 당신에게 "머리를 써라(use your noodle)"라고 말할 때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당신에게 지도를 위해 그분께 의지하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음모"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은 단지 그분과 그분이 선택하신 민족인 해적들의 장난기 많은 본성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언어만으로는 회의적인 과학자들에게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언어에 기반한 주장은 과학자들에게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몇 년 동안 진짜 책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차갑고 확실한 사실이 필요합니다.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진화 과학자들이 Michael J. Behe와 같은 ID 과학자들의 연구를 어떻게 파헤치려 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는 그의 독창적이고 종종 앞뒤가 맞지 않는 대작, '다윈의 블랙박스: 생화학적 도전'에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의 개념을 주장합니다. 시작 부분 어딘가에서, Behe는 다음과 같은 통렬한 진술을 합니다: "환원 불가능하게 복잡하다는 것은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기여하는 여러 개의 잘 맞는 상호 작용 부분으로 구성된 단일 시스템을 의미하며, 여기서 부분 중 하나라도 제거하면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기능을 멈추게 됩니다."[* 휴! 복잡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Michael J. Behe, '다윈의 블랙박스: 생화학적 도전', Free Press, 1996, p. 39).] 그리고 그는 "진화 메커니즘"과 "일부 복잡한 생화학적 세포 시스템의 출현" 및 기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평신도와 고등학교 생물학도들에게는 허튼소리처럼 들립니다.[* 같은 것.] 하지만 요점은 이것이 잘 생각된 과학이며, Behe가 과학자처럼 말할 수 있다는 거의 반박할 수 없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자연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응답하는 동안, 저는 제 컴퓨터를 사용하여 당대의 가장 위대한 장군들에 맞서 사무라이 전사들의 전체 군대를 이끄는 것도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무승부라고 합시다.

양측 모두 나름의 주장이 있지만,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는 더 그럴듯하고 엄청나게 더 타당한 간단한 답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우리를 오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의 과학적 데이터를 변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날스괴는 보이지 않으며 정상적인 물질을 쉽게 통과합니다.

우리의 이론이 지적설계와 매우 유사하게 들릴 수 있지만, ID와 날스괴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틀렸고 우리가 옳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이 다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D처럼, 우리는 약간 비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을 사용합니다. 즉, 먼저 결론을 정의한 다음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를 수집합니다. 이것은 더 조화롭고 유동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미 결론을 선택했을 때 연구가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ID 지지자들은 그들의 독창성에 대해 축하받아야 합니다. 이전에 과학자들이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미지의 것들과 씨름해야 했던 곳에서, 그들은 이제 단순히 편리한 결론을 선택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정직하게 말해서, 비록 우리가 이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을 공유하더라도, ID 사람들이 그것을 먼저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아마도 언젠가 곧 ID 커뮤니티도 그분의 국수 가락에 감동받아 파스타파리안들과 힘을 합칠 것입니다.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좋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비전통적인 초자연적 이론들이 마침내 자연적이거나 "편견 없는, 증거에 기반한" 이론들과 동등한 신뢰를 받고 있는 흥미진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열린 마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가 증명할 것이 좀 있습니다!

===성찬식 테스트===
'''초록'''

초자연적 설명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1) 우주에 존재하며, (2) 그의 국수 가락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진정한 신자들에게 선함과 저렴한 영양을 퍼뜨리고 있다는 놀랍도록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공하는 반면,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량화 가능한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존재의 증거로 과학적 테스트를 고안했습니다. 이 테스트는 반복 가능하고 제3자에 의해 쉽게 검증될 수 있으며, 날스괴 교회는 모든 의심하는 사람들이 다음의 실험적 증거를 사용하여 우리가 이미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도록 권장합니다.

'''배경'''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에서 제공하는 성찬식이, 예를 들어, 기독교 성찬식보다 더 좋고 더 오래 지속되는 영양적 이점을 가져올 것이라고 제안되었습니다. 연역적 추론을 통해, 이것은 그의 국수다움의 증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방법'''

이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는 평균 키, 체중, 지능을 가진 두 명의 피험자[* 사람.]를 선택했습니다. 그런 다음 외부 요인을 줄이기 위해 72시간 동안 금식시켰습니다. 72시간 후, 한 피험자에게는 종이처럼 얇은 웨이퍼로 구성된 기독교 성찬식을 제공했습니다. 다른 피험자에게는 많은 양의 스파게티와 미트볼로 구성된 날스괴 성찬식을 제공했습니다.

'''결과'''

두 피험자 모두 성찬식 전후에 활력 징후를 기록했습니다. 테스트 완료 시, 기독교인은 심박수, 체온, 뇌 기능이 감소한 채 무기력한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파스타파리안은 심박수, 체온, 뇌 기능이 증가했다고 기록했으며, "배부르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온전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날스괴 테스트 피험자는 그분의 임재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추가'''

어떤 사람들은 스파게티 1,200칼로리 대 웨이퍼 2칼로리가 공정하고 타당한 실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들의 말에 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이것이 초자연적으로 기반한 연구이지만, 참견하기 좋아하는 과학자들이 그들의 "동료"가 지지할 것이라는 증거를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그의 국수다움을 보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몇 개의 고리를 통과하는 데 동의합니다.] 우리는 실험을 가능한 한 현실적인 성찬식 설정에 가깝게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과학의 이익을 위해, 각 피험자가 동일한 총 칼로리를 섭취하는 추가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우리의 발견은 기독교인이 2,500칼로리의 웨이퍼(또는 1,250개의 웨이퍼)를 섭취하자 격렬하게 아팠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성찬식 웨이퍼가 기본적으로 판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파스타파리안은 계속해서 활력 징후가 증가하는 것을 보여, 그의 국수 같은 임재를 보여주었습니다.

'''성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