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성경]] [include(틀:상위 문서, 문서명1=성경)] ==개요== 성경의 내용과 해석, [[인천과학고등학교|인곽]] 학생으로서 성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교훈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 지에 대해 다루는 문서이다. ==들어가기 전에== 성경은 현대의 문헌과 다른 점이 몇몇 있고 읽을 때 유의할 점이 있다. ===면책 조항=== 성경에 과학적, 역사적으로 틀린 것처럼 보이는 표현이 나온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오류 없이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고, 과학책이나 역사책이 아니다. 과학, 역사 지식이 부족한 고대인들의 수준에서 틀리게 서술했다고 해도 구원에 이르는 진리까지 오류를 범했다는 뜻이 아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에게 뭐 틀렸다고 엄청 뭐라 하진 말자. ===성경의 사본=== 성경은 총 66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에 원본이 전해지는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 사본들을 비교해서 원본을 추측하는 일을 주로 한다. 하지만 사본들 간의 차이는 대부분 단순 오타이거나 단어 선택 차이이다. 따라서 이것도 성경 전체의 신뢰성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때로는 문장 몇 개가 통째로 빠지거나 추가된 게 있긴 한데, 이는 필사자들이 필사하면서 설명을 위해 추가한 구절들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핵심 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믿음직스러운 사본은 발견된 바 없다. ===고대 근동 문헌의 서술 특징=== 고대 근동 문헌은 지금과는 다른 서술 특징이 나타나는데, 현대의 기준에 맞춰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서 성경을 쓰게 하였지만, 불러 주는 대로 받아쓰라고 하지는 않았다. 성경의 각 책은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저자의 신념을 고려해야 한다. ===해석의 다양성=== 기독교는 엄청나게 오래된 종교인 만큼 종파가 엄청나게 많고, 성경의 각 사건에 대하여 종파들끼리 해석도 약간씩 다르다. 이 문서에 여러 종류의 해석이 있다고 해도 모든 가능한 해석을 다 포함한 것은 아닐 수도 있으며, 서술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 ==모세오경== 모세오경이라 불리는 구약의 처음 다섯 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전통적으로 모세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모세가 모세오경을 100% 썼고 그 내용이 완벽하게 100% 그대로 내려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모세오경의 핵심적인 내용은 모세가 한 일들과 모세의 가르침이고, 그가 없다면 모세오경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창세기는 성경 전체의 서문 역할을 하며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집트 탈출을 다룬다.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율법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떠도는 동안 겪은 일을 기록했다. ==천지 창조== 태초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하나님은 이미 계셨다. 하나님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로 결심했고, 말씀하심으로써 창조를 시작한다. 첫째로, 그는 "[[임빛나(32기)|빛이 있으라]]." 라고 말씀하시니 곧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어서 빛을 낮, 어둠을 밤이라 불렀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으니 첫째 날이었다. 하나님은 그 다음 하늘을 기준으로 물을 갈라서 하늘 아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바다로 만드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서 둘째 날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은 셋째 날에는 식물, 넷째 날에는 해[* '큰 광명체'라 적혀있다.]와 달[* '작은 광명체'라 적혀있다.]과 별, 다섯째 날에는 동물들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 하지만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는데, 이 모든 것들을 다스리고 가꾸어나갈 통치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닮게 사람을 만들고 그들에게 이 땅을 다스리게 하자." 고 말씀하시며 흙에 자신의 숨을 불어 넣어 사람을 만드니 그가 바로 첫 사람 아담이다. 또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만들어 거기에 여러 나무와 동물들을 두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만들었다. 에덴 동산의 가운데에는 '선악나무'와 '생명나무'를 두었고 아담을 에덴 동산의 관리자로 두었다. 어느 날 아담이 외로워하는 걸 본 하나님은 아담이 자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서 첫 여자를 만들고 그 이름을 '하와[* 이브라고도 한다.]'라 했다. 아담이 일어나서 하와를 보고는, "너는 내 뼈 중에 뼈이고 살 중에 살이구나." 하였고 이렇게 남자와 여자는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게 된 것이다.[* 결혼의 시작이다.] 한편, 아직 이때까지는 인간들이 선악을 몰라 벌거벗고 있었다. 이렇게 6일 동안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그 다음 날에 쉬었다. 이것이 안식일의 기원이며, 일요일에 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원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만 로마에서 어찌 저찌 하다 보니 일요일에 쉬게 되었다.] ===해석 :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있었고 온 세상과 우리를 만드신 분이다. ===사람을 신의 형상에 닮게 창조된 것에 대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분처럼 생각할 수 있고 그분과 같은 사랑, 동정, 연민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선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이 '우리'라 하신 이유===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은 '나'라 하지 않고 '우리'라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첫째,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라고 말씀하셨다는 해석이다. 둘째, 고대 근동에서는 왕을 복수형으로 나타내어 높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는 해석이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 우리는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므로 [[과학(교과목)|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현대 과학에서는 단 6일 만의 창조는 부정되며 인간도 단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진화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기독교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에 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2가지가 있다.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믿는 파와, 진화론을 받아들이자는 파가 있으며, 각각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유신진화론과 창조과학==== 2025년 6월 4일,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가 해임되었다. 그가 '유신진화론'을 지지했다는 이유였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1076|관련 기사1]]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2213|2]]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6233|3]]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6428|4]] 도대체 유신진화론이 뭘까? 먼저, 진화론이 등장하기 전에는 6일 창조론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사실 무언가 특별한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딱히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59년에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며 기존의 6일 창조론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이에 기독교인들은 크게 두 파로 나뉘어 각자 주장을 한다. 1. 유신진화론(진화적 창조론) 이 견해는 넓은 스펙트럼이 있지만 공통적인 주장은 하나님이 진화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성경을 내려주셨지만 또 이성도 주셨고, 이성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되므로 이성적 연구의 결과물인 진화론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2. 특수 창조론 특수 창조론은 하나님이 성경에 쓰여 있는 그대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생각하는 해석이다. 그들은 창세기의 창조를 유신진화론처럼 지나치게 비유적으로 해석하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성경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각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유신진화론 측 성경에 적힌 창조 기사는 하나님이 히브리인 수준에 맞춰 창조를 설명한 것 뿐이며, 무언가 과학적으로 서술하려던 것이 아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빅뱅에 대해 설명하며, 쿼크와 렙톤과 광자의 형성 및 태양계의 형성, 지구의 형성, 원시 지구에서의 복잡한 유기물의 생성에 대해 알려줄 이유가 뭔가? 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사실 알 필요도 없다. 창세기 1장에서 '날'이라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욤(히 : יום, 영 : yom)인데, 이건 지구가 한 바퀴 도는 하루란 뜻도 있지만 특정한 기간을 뜻할 때도 있다. 첫째 יום을 첫째 기간, 둘째 יום을 둘째 기간이라 해도 된다. 애초에 태양이 첫째 날부터 있던 게 아니어서 낮과 밤이 없는데 하루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 즉 과학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로마서 1장 20절) 이는 오랫동안 '자연 신학'의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질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만물에 적어 놓았으므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는 폭이 넓어지고 그분을 더 잘 알게 된다. 또,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여기서 말씀은 그리스어로 '[[LOGIC|로고스]](헬 : λόγος, 영 : logos)'로, 논리, 이성, 진리를 뜻한다. 기독교인이 믿는 하나님은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이상한 분이 아니라 논리적이시고 아름다우신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 하나님에 대해 더 알 수 있다. 진화론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확고한 이론이다. 엄청나게 많은 화석과 각 종들의 유전자가 증명했으며 지금도 무수히 많이 증명되고 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이 거부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논리를 싫어하는 반지성주의자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지 않을까? 심지어 진화론이 탄생하기도 전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조차 이성과 경험에 의한 확실한 사실에 대해 성경에 근거한답시고 허튼 소리를 하면 오히려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인들의 무식함을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특수 창조론 측 물론 진화론이 현재 주류 과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맞다. 하지만 완벽한 [[과학(교과목)|과학]] 이론은 없다. 인간이 세운 모든 과학 이론은 계속 변해왔으며, 진화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한때의 과학 이론에 근거한 성경 해석은 그 이론이 무너지자 함께 무너졌다. 게다가 성경을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비유라는 듯이 해석한다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닌가? 그리고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기독교의 다른 교리들과 모순이 생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자신을 닮게'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진화적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면 도대체 자신을 닮은 게 언제인가? 언제부터 사람인가? 진화론에 따르면 사람은 계속 변한다. 또,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창세기 1장 11절)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 21절) 여기에선 '종류대로'라는 말을 엄청 강조하는데 진화론처럼 생물들이 연속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종류가 명확히 나뉘어져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서 '날'이라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욤이 물론 하루 외에도 기간이란 뜻도 있지만, 하지만 창조 기사에서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고, 성경의 다른 구절은 '아침'이나 '저녁'이 오면 욤을 하루로 해석하는 빈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욤을 날이라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은 세상과 구별되어 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다. 바뀔 수도 있는 현재의 과학에 얽매여 왜 세상 삶과 타협하려 하는가? 억지로 세상에 맞추려 하면 도대체 기독교인인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결론==== 중요한 건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 지가 아니라, 창조의 의미를 따지는 것이다. 창조의 방법이 어떠했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창조된 우리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며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청지기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고대 근동 창조 신화와 유사성=== ====에누마 엘리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기원전 18세기 경 수메르와 아카드를 계승한 '바빌로니아'라는 문명이 있었다. 그런데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와 창세기가 유사하다는 주장이 있다. 먼저 바빌로니아 신화를 대충 요약하다면 다음과 같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고 '티아마트'라는 바다의 여신이 있었다. 그녀는 혼돈을 상징한다. 티아마트는 여러 젊은 신들을 낳는데, 젊은 신들이 소란스럽게 하자 남편 압수와 함께 그들을 죽이려 하지만 압수가 지혜의 신 에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티아마트는 화가 나 자신을 따르는 신인 '킨구'에게 신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준다. 이에 반대하여 에아의 아들인 마르두크가 출전한다. 마르두크는 자신의 능력으로 티아마트와 맞서 싸워 티아마트를 반으로 가르고, 상반신은 하늘, 하반신은 땅으로 만든다. 여기서 혼돈을 상징하는 여신 티아마트는 '흑암'이라는 뜻이자 역시 혼돈을 상징하는 히브리어 단어 '테훔(히 : תְּהוֹם, 영 : tehom)'과 유사한데, 창세기에도 테훔이 쓰인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תְּהוֹם)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장 2절) 여기서도 테훔이 혼돈과 함께 쓰인다. 게다가 마르두크가 혼돈(티아마트)를 찢어 하늘과 땅으로 나눈 것이 하나님이 혼돈을 하늘 위와 아래로 나눈 것과 유사하다. 이는 창세기가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며, 실제 무신론자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이에 관해서 기독교에서 내놓는 설명은 주로 두 가지이다. 1. 일부러 창세기를 읽는 사람이 바빌로니아 신화를 연상시키도록 한 것이다.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는 신들의 싸움이다. 신들끼리 서로 혼란스럽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 반면, 하나님은 폭력이 필요 없이 그저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신들끼리의 잔혹한 싸움을 통해서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질서 있고 규칙적으로 창조했다. 창세기를 읽는 고대 근동 사람들로 하여금 "이 신은 뭔가 확실히 다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2.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이후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대부분의 문명에서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다. 성경은 그것을 온전하게 적은 것이고, 다른 문화의 신화들은 이것을 다신교적으로 왜곡하고 변형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인간 창조==== ===일부일처제를 지향하는 성경===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장 24절) 이것은 당시 고대 근동에서 보기 힘든 윤리 의식을 담고 있다. 일부다처제가 만연했지만 남자와 여자 '둘이' 한 몸을 이룬다 하고 있다. 부모님과 이익 관계에 의해 부모님 맘대로 배우자가 결정되었던 시기에 '부모를 떠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일부일처제를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인간, 자연의 청지기===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을 다스리고 가꾸어 나가라는 임무를 주셨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의 이익만을 고려하여 그 말씀을 어겨왔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직면한 기후위기도 우리가 초래한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해결할 의무가 있다. 다른 생물들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생물들보다 월등히 높은 능력과 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만 잘 살자고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니라 이 자연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인곽 학생으로서 장래에 자연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갈 인재가 되어야 한다. ==인간의 타락== 한편, 하나님이 만드신 천사 중에서 하나님의 큰 영광을 보고도 반역한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악마가 되었으며 그 중의 왕은 사탄이다. 사탄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어지럽힐 기회를 노리다가 방법을 찾았다. 바로 선악과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사탄은 뱀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하와가 선악과 앞을 지나갈 때에, 뱀이 된 사탄은 하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하와! 오늘도 만나네." "오, 하나님이 만드신 동물 중 가장 영리하고 멋진 뱀이구나!" "하하, 고마워. 근데,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 에덴 동산 나무에 열린 열매 전부를 너에게 먹지 말라 하셨어?" "아, 그건 아니야. 웬만한 건 거의 다 먹을 수 있는데, 지금 네가 올라 있는 선악나무의 열매만 절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어. 그걸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었나?" "아... 그래?" 뱀은 간교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그거 알아? 하나님이 너흴 속인 거야. 너희를 무서워하시거든. 이 선악과를 먹는다 해도 너희는 죽지 않아."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이 열매를 먹으면, 네 눈은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선과 악을 알게 될 거야." 뱀은 잠시 숨을 가다듬고, 대단한 비밀을 들추듯 말했다. "이걸 먹기만 하면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네 남편 아담도 마찬가지야. 하나님은 자기 외에 다른 자가 선악을 알게 되는 게 두려워서 너희에게 먹을 수 없게 한 거야." 하와가 선악과를 가만 들여다 보니, 열매가 탐스럽기도 하고 먹음직스럽기도 한 것이 꽤 욕심 났다. "그럼... 한 번 먹어볼까?" 하와는 아담을 부르고 그와 함께 선악과를 먹었다.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먹자, 그들의 눈이 밝아지며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즉시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몸을 가렸다. 하나님이 두려워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나무들 사이에 숨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 "아... 하나님. 제가 벗고 있는 게 부끄럽고 두려워서 숨어 있었습니다." "누가 네게 네가 벗고 있음을 알렸느냐? 설마 네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 그... 하나님께서 저에게 같이 있으라고 한 여자 하와가 저한테 주길래 저도 한 입 했습니다..." "음 그래? 하와야, 너는 왜 그렇게 했느냐?" "아, 그... 뱀이 저에게 좋은 것이라고 속여서 제가 그만 따 먹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다. "너희는 이제 땀 흘리고 고생하고 나서야만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원래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반드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와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자야, 앞으로 네가 아기를 낳을 때에는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또 너는 남편을 원할 테지만 남편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 그리고는 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은 서로 원수가 될 것이다. 너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하겠지만, 여자의 후손은 너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또, 뱀은 평생 배로 기어다니며 사는 벌을 받았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생물 중 가장 영리하고 멋진 뱀은 가장 낮은 곳으로 지나다니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먹어 영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 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았고 아담과 하와를 [[2025년 방송실 봉쇄 사건|에덴 동산 밖으로 쫓아냈다.]] ===해석 : 원죄===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로봇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이를 '자유의지'라고 한다. 근데 인간들이 이 자유의지를 악용해서 죄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은 인간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죄를 범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최초의 죄를 원죄라 부르며, 원죄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죄는 지금까지도 강하고 당당한 기세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원죄의 이전과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창조하신 질서 있는 세계가 죄로 인한 무질서로 물들었다. 에덴 동산은 아름다운 창조 세계의 상징이며,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건 인간들의 죄 때문에 사람들이 창조 세계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았다는 것은 인간이 반드시 죽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본래 사람들을 영원히 살게 해 줄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생명나무를 만들어 놓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죄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고, 그 벌은 죽음이다. 죄로 인해 이 땅에 죽음이 들어왔다. ===악의 문제=== 신이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선하지 않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신은 선하지 않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가 그를 신으로 불러야 하는가?[* 출처 : 나무위키 '악의 문제' 문서] 이는 흔히 '악의 문제'로 알려져 있다. 악의 문제에 대해 답하는 학문을 기독교에서 '신정론'이라 부른다. 악의 문제에서 '악'은 인간과 사회의 죄악, 자연재해와 같은 자연악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인간의 죄라 하면은 살인, 폭력, 강간, 도적질, 거짓말과 같은 온갖 범죄들을 말한다. 자연악이라 하면 지진, 홍수, 전염병, 태풍 같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온갖 고통들이다. 왜 평생 봉사를 해온 노인이 말기 암으로 고통 받으며 죽는 걸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고 선하다면 왜 사랑하는 인간들을 위해 악을 단번에 없애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악과 고통을 만들지 않았으면 되는 일 아닌가? ====자유의지==== 기독교에서 악의 문제에 관하여 답하는 대답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이다. [[알제리]] 출신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신국론>에 자세히 나와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닮아 인간을 만들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무척 사랑하셨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그들에게 풍족한 환경과 힘들고 고통스럽게 일하지 않아도 음식과 다른 것들을 주셨다. 또, 자유의지도 주셨다. 자유의지 덕분에 우리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로 죄악을 선택했다. 이 죄악 때문에 세상에 악이 들어왔다. 죄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죄에 따른 고통도 세상에 있어야 한다. 죄를 짓고도 멀쩡하게 잘 사는 세상이 오히려 불의한 세상이다. 그럼 "처음부터 사람들이 죄를 못 짓게 설계했으면 되는 일 아닌가?"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준다고 해 놓고는 그 기능을 부분적으로 제한하면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지인가? 우리는 동물들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 그들에게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개념을 동물들이 이해하고 실행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유의지고 뭐고 무조건 착한 일만 하게 설계되었다면 애초에 그 사람이 한 일을 진정으로 '착한 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자신이 스스로의 행동을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해야 진정으로 선한 행동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의미 있는 고통==== 당장 거대한 고통에 부딪힌 사람 앞에 자유의지만을 말하며 단지 악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고통을 딛고 성장할 힘을 주어야 한다. 모든 고통이 오직 손해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치과에서 충치를 치료하는 고통을 잠시 감수하면 앞으로 계속 건강한 이빨을 사용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간의 고통을 주셔서 더 성장하도록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저히 해결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고통은 어떤가? 예컨대 한 20세 청년이 어린 시절부터 오랜 연습 끝에 프로 야구 선수가 되어 첫 출근을 하던 도중 음주운전자의 차에 부딪혀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영원히 야구는커녕 걸어다니지도 못할 운명이다. 여기서 어떤 '성장'을 찾을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같은 의미 없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고통이 대체 사람을 어떻게 나아지게 할까? 이에 기독교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우리의 지식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만 의미 있는 게 아니라고. 하나님의 계획은 크고 때때로 기이해서 우리의 지혜로 단번에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청교도 혁명 시기에 "존 밀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여러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크롬웰이 집권하자 크롬웰의 보좌관이 되어 왕정을 비판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적부터 지나친 과로와 눈의 만성적인 질병으로 인해 눈이 멀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찰스 2세에 의해 왕정이 복고되고 찰스 2세는 밀턴을 감옥에 가둔다. 앞도 보이지 않고 세상의 모든 권력과 자유를 잃었다. 누구나 절망하고 삶의 의지를 잃을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 전설의 서사시 <실낙원>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써냈다. 그의 사상은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현재 영국에서 밀턴은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위대한 시인으로 불린다. 하나님은 이겨낼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 이유도 모르고 실제로 의미 없는 고통일 수도 있지만, 기독교는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무신론적이고 극도로 유물론적인 세계관에서 모든 악과 고통은 '단순 사고' 그 이상으로 생각될 수 없다. 모든 악이라 불리는 것들은 물리 법칙이 작동함에 따라 의도 되지 않은 부차적 사건이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이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냥, 그저 있을 뿐이다. 도대체 그런 사고방식이 삶에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 물론 이 모든 논의는 아직도 "그래서 하나님은 왜 악을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죽어가는 군인과 민간인들, 갑작스러운 홍수에 무너지는 건물과 여러 사람들의 일생들, 인곽인들의 수면 부족. 왜 내 눈 앞에 보이는 바로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은 왜 침묵하는가? 사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악을 해결했다. 자신이 인간이 되는 다소 독특한 방법을 사용해서 말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한 예수님==== 아직 빌드업을 덜 했지만 예수님 얘기를 해 보자. 하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 않다. 하늘에 있는 높은 권좌에서 내려온다. 스스로의 편안을 버리고 그 누구보다도 낮아지신다. '예수'라는 이름이 사람이 되어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을 함께 겪으신다. 사람들에게 조롱 당하고, 버림 받고, 채찍질 당하고, 굶주리고, 피 흘렸다. 다른 모든 종교와 달리 기독교의 신만이 직접 사람이 되어 사람들의 고난에 동참한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벌 받았다. 덕분에 죄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었다. 하나님은 악의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해결하셨다. 앞으로 올 하나님의 나라엔 아무도 눈물 흘릴 일이 없을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희생하여 자유의지로 발생한 모든 죄악을 없앤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사람을 고통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같이 고통 당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종국엔 누구나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다음을 참고함.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2018.3.2,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https://namu.wiki/w/%EC%95%85%EC%9D%98%20%EB%AC%B8%EC%A0%9C|악의 문제]] [[https://namu.wiki/w/%EC%A1%B4%20%EB%B0%80%ED%84%B4|존 밀턴]] [[https://comic.naver.com/bestChallenge/detail?titleId=779637&no=35|예수쟁이 다이어리1]] [[https://comic.naver.com/bestChallenge/detail?titleId=779637&no=36|2]] [[https://comic.naver.com/bestChallenge/detail?titleId=779637&no=37|3]] ====선과 악의 기준은==== 사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악하다는 게 불가능하다. 이것을 악의 문제의 시작부터 제시하면 말장난 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맨 마지막에 배치했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 1949~)는 다음을 논지로 하는 '도덕적 논증'을 주장했다. 1.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객관적인 도덕 가치와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2. 객관적인 도덕 가치와 의무는 존재한다. 3. 따라서 신이 존재한다. 중학교 사회 책에 나오듯이,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보편 윤리'가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같은 기본적인 것들 말이다. 우리가 무언가 도덕적인 주장을 할 때(예컨대 도둑질 하지 말라), 과연 우리의 주장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오늘날 '도덕 상대주의'가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윤리적 규범이 시간(시대)과 공간(장소)에 따라 바뀐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선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 선의 절대적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덕적 행위를 강하게 주장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는 한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자. 당신은 그 사람에게 "살인하면 안 돼."라고 말한다. 그런데 살인자가 "나는 살인이야말로 참 도덕적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 당신 개인의 생각을 저에게 강요하십니까? 당신이 어떤 자격이 있길래..." 라고 말하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공자나 맹자,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댄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들도 조금 위대한 사람일 뿐이지 그들의 생각이 꼭 우리의 윤리적 규범이 될 수 없지 않는가? 어떤 사람이든 다른 사람의 도덕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의 도덕적 기준은 우리보다 높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것에서 와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이 정도 수준의 논리는 고등학생 수준에서도 쉽게 반박될 수 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도덕 명제는 단지 진화적 유리함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인하는 경향이 있는 인류는 자연 선택에 의해 강하게 도태되었고 살아남은 우리들은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도덕적인 감정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도덕적인 의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살인한 뒤에 몰려오는 엄청난 죄책감 정도는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자연 선택의 흔적이라 하자. 그렇다면 살짝 복잡한 전쟁은 어떤가? 2025년 9월 미국에서 시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공감하는 미국인은 34%, 팔레스타인에 공감하는 사람은 35%라고 한다. [[https://news.nate.com/view/20250930n32820|관련 뉴스 기사]] 각자 나름의 근거를 두고 말할 것이다. 근데 그 윤리적 근거는 어디서 나오는가? 남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 당신은 무엇을 근거로 말할 수 있는가? 무신진화론--미안하다. 내가 급조한 단어다.--의 도덕은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불의와 악으로 가득찼다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이 우주를 넘어서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기준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기독교의 신은 악할 수 없다. 조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성품이 곧 선(善)이다. 다음을 참고함. [[https://www.reasonablefaith.org/translations/korean/miscellaneous/moral-argument|도덕적 논증]] ===미리 계획된 예수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장 15절)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으로 해석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함으로 벌 받는 것을 원치 않아서 예수님 탄생 훨씬 이전부터 예수님을 보낼 계획을 하고 있던 것이다. ===고대 근동 신화와 유사성=== 어떻게 보면 성경의 인간의 타락 부분은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신들의 왕 제우스의 명령을 받들어 지혜로운 신 프로메테우스가 여러 남자 사람들을 만든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신들만의 소유물인 불을 몰래 훔쳐 인간들에게 가져다 준다.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를 기뻐하며 숭배한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의 바위에 묶고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한다. 또, 인간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아직 사람들 중 여자가 없으니 직접 여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고 신들의 여러 좋은 능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헤르메스'라는 신은 호기심을 주었다. 모든 능력을 가진 완벽한 여자 '판도라'를 만들어 인간 세상에 보낸다. 판도라에게 반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이 판도라와 결혼하고, 제우스는 둘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피토스(πῖθος)[* 흔히 상자라 하는데 오역이다. 그리스어 원어는 토기인데 우리나라 말로는 항아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를 선물로 준다. 프로메테우스는 절대 제우스의 선물을 받지 말라고 경고했었지만, 판도라는 자신이 받은 호기심 때문에 피토스를 연다. 그러자 질병, 분노, 질투 등 온갖 재앙들이 세상 밖으로 빠져나간다. 최초의 여자가 호기심으로 세상에 죄악을 퍼뜨렸다는 이야기의 핵심이 매우 비슷하다. 이에 대해서는 역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할 수 있다. 1. 인류는 대체로 과거의 아득한 사실을 나름의 신화로 기억하는데, 지금의 판도라 얘기처럼 다른 신화는 그것을 다신교적, 비윤리적으로 왜곡하고 변형하여 잘못 기억한 것이고, 성경은 이를 정확히 기억한 것이다. 2. 창조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읽는 사람이 하여금 야훼(하나님의 이름) 신앙이 다른 신들에 비해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는 신이 인간에게 재앙을 주기 위해 내려준 존재이다. 따라서 (남자인) 인간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식이 되어버린다. 반면, 성경의 하와는 하나님이 남자인 아담과 서로 돕고 인류의 번성을 위해 보낸 존재다. 읽는 사람은 둘을 무의식적으로 대비시켜 "이 신은 뭔가 다르구나~"하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선택한 가부장제?===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תְּשׁוּקָה) 남편은 너를 다스릴(מָשַׁל)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장 16절) 그냥 읽어보면 뭔가 하나님이 가부장제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사실 '원하다'와 '다스린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살짝 흥미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 '원하다'라는 뜻으로 쓴 히브리어 תְּשׁוּקָה[* 발음은 '테슈카' 정도 된다.]는 강렬한 갈망, 충동적인 욕망을 뜻한다. 다스린다라는 뜻으로 쓴 히브리어 מָשַׁל[* 발음은 '마샬' 정도 된다.]는 지배하다, 강제로 억누르다 같은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원죄 이후로 평화로웠던 부부 관계가 뒤틀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부장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 죄 때문에 망가진 부부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말이다. ==가인과 아벨==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이유=== ===용서하는 하나님=== ==대홍수== ===자신이 만든 세상을 멸망시킨 이유=== ===전 세계의 대홍수 설화=== ==바벨탑== ===교만=== ==아브라함 선택== ===미리 계획하는 하나님=== ===팔레스타인 분쟁=== ==소돔과 고모라== ===동성애=== ===롯의 아내의 최후=== ==하갈과 이스마엘== ===아랍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이삭 번제== ===진정한 믿음=== ===인신공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