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역사]] == 제2차 세계대전 개요== 나치 독일이 아돌프 히틀러의 뒤틀린 사상으로 인해 치른 전쟁[* 이견이 있는 부분이다. 당시 독일의 상황에서 전체주의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다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미친놈인건 대부분 동의한다.]이자 최악의 전쟁. 동시에 동양에서는 대동아공영권을 위한 일본제국의 침략으로 일어났다. == 전쟁 전 ==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같은 게르만족이라는 이유로 투표를 통해 병합했으며 이 합병은 워낙 역사적인 일이라 합병이라는 뜻의 안슐루스라는 독일어가 이 사건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어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중 독일인이 많이 사는 지역인 주데텐란트를 강제 병합했다. 이는 체코슬로바키아 안보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요새가 죄다 주데텐란트에 있었기 때문에 병합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에게 대항할 군사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봐도 무방하다. 프랑스나 영국 등은 뮌헨 협정[*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단어로 유명하다]을 통해 독일의 이러한 행위를 묵인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폴란드가 독립하면서 독일은 본토와 동프로이센으로 영토가 나뉘게 되었는데[* 단순히 폴란드 독립 때문은 아니고,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 윌슨에 14개조 원칙에 독립국이 항구를 가져야 한다고 해서 폴란드에게 항구를 주기 위해 ~~이딴~~ 월경지가 생겨났다.], 동프로이센과 브란덴부르크 주 사이에 단치히 자유시라는 자그마한 폴란드 도시가 있었으나 폴란드는 이 도시를 제외하면 내륙국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월경지 문제 해결을 빌미로 폴란드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는데... 한편 일본은 만주사변을 통해 괴뢰국 만주국을 세웠고, 이미 1910년에 조선을 강제 병합했으며, 과거 청과의 사이에서 조약을 체결해 타이완 섬을 강제 합병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의 맹주였던 중화민국만이 남았고, 이 와중 무능한 무타구치 렌야는 한 병사가 사라졌다고 착각하고 중화민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는데.... == 유럽 전장 == 독일이 소련과 독소 불가침조약[* 소련 외무인민위원인 몰로토프와 독일 외무장관인 리벤트로프의 이름을 따 몰로토프-리벤트프 조약이라고도 한다.]을 맺고 같이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그 결과 폴란드가 소련과 나치 독일에 의해 분할되며, 소련이 뻇어간 폴란드의 영토는 소련이 붕괴된 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로 나누어 들어갔다. 즉 폴란드는 영토의 절반을 뺏긴 것이다...[* 대신 독일 영토가 좀 뜯겨 폴란드에게 갔다.] 이어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할 계획을 세운다. 당시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지방 인근에 마지노선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요새를 구축한다. 독일이 이쪽으로 밀고 들어오면 완전히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판단을 틀렸다. 왜냐고? 독일이 네덜란드와 벨기에 쪽으로 돌아와서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걸 낫질 작전이라 부르는데, 문제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이쪽 국경에서 매우 가깝다. 그래서 프랑스는 독일이 공격을 시작한지 겨우 6주만에 패배하고, 남은 병력들은 덩케르크에서 영국으로 철수하게 된다. 프랑스에는 독일의 괴뢰 정부인 비시 프랑스가 들어서게 된다. 독일은 프랑스를 처리한 이후 동부 전선에 눈을 들이게 되는데[* 사실 그 전에 영국 본토 항공전이 있었다. 루프트바페는 결국 영국 제공권 장악에 실패하고~~개털리고~~ 바다사자 작전을 실행하지 못한 채 소련으로 갔다.], 바르바로사 작전을 통해 소련을 침공한다. 이 과정에서 발트 3국,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지역을 점령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데, 독일의 동맹국인 이탈리아가 당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발칸 반도 쪽을 건드렸다가 꼬이면서[* 오늘도 이탈리아는 짐덩이가 되었다.], 독일은 이탈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소련 침공 병력을 일부 빼다가 그리스와 발칸 반도를 침공하는 데 사용한다. 한편 헝가리와 루마니아는 각각 트리아농 조약으로 영토를 많이 뺏겼고 소련에게 몰도바 지역을 뺏기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다. 소련을 공격하는 데에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고 카렐리야 지역의 영토 문제로 겨울전쟁을 하고 있던[* 한번 휴전 협정을 한 이후 다시 전쟁을 시작해 계속전쟁이라 불린다.] 핀란드, 그리고 독일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소련을 공격한다. 마침 당시 소련은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장교 대부분이 물갈이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초기 대응을 잘 하지 못했고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등 중요한 땅을 뺏기며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인근까지 추축군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핀란드군과 독일군이 3년간 지속적으로 공격했음에도 소련이 압도적인 인구와 물량으로 승부를 보자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또한 격퇴당하며 밀리기 시작한다. 이후 독일군은 부족한 연료(즉, 석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쿠 유전이 있는 소련의 캅카스 지방으로 향할 계획을 세우고[* 청색 작전], 소련 남부 교통, 보급 등의 중심지이자 주요 산업 도시로 무려 스탈린의 이름을 딴 스탈린그라드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독일군은 시가전 크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후 주코프의 천왕성 작전으로 이곳에서 독일군 남부집단군이 궤멸[* 파울루스가 이끄는 제 6군이 '''소멸'''했다.]당하며, 이로 인해 독소전쟁의 전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개쳐맞던게 이제 해볼만해졌다는 뜻이다. 진정한 역전은 쿠르스크 전투 이후. 이때가 되면 독일군은 전략적 공세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당시 독일은 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 , 벨라루스를 모두 점령한 상태였는데,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이긴 후 전황을 뒤집으며 발트 3국을 강제 병합하게 되었다. 한편 미국은 추축국 일본으로부터의 침공으로 인해 유럽 전선에도 참여하는데, 당시 프랑스 망명 정부의 수장 샤를 드골,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과 함께 노르망디에 상륙할 작전을 세운다. 이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라고 부르며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성공하며 독일은 동부와 서부 전선 모두에서 불리하게 되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처럼 된 것이다. 프랑스 지역과 동유럽 지역을 모두 잃으며 독일은 상습적인 공습에 시달린다. 대표적인 것이 드레스덴 대공습으로, 공업도시 드레스덴을 말 그대로 초토화시킨 공습이다. 독일은 드레스덴 대공습을 통해 공업도시 하나를 통째로 잃으며 점점 멸망의 길을 걷게 되며, 마침내 1945년 4월 30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 1945년 5월 8일 미국, 프랑스, 영국에 항복, 5월 9일 소련에 항복, 5월 23일 플렌스부르크 정부가 멸망하며 유럽 전장이 완전히 끝나게 된다.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 국제재판을 통해 나치당의 전범이 처형당하게 된다. == 아시아 전장 == 일본은 루거오차오 사건을 빌미로 중화민국을 침공한다. 베이징, 난징, 충칭, 광저우 등 많은 중요 도시를 점령하였으며, 동남아시아에서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 등을 모두 점령하게 된다. 이때만 해도 태평양 제해권과 제공권은 일본에게 있었으나, 하와이의 진주만과 괌 등 미국의 해외 영토를 공습하며 태평양 전쟁의 시작을 알린다. 일본은 사실 미국에 비해서 매우 열세이지만 그럼에도 무능한 일본군 간부들은 미국 공습을 감행[* 사실 무능하다고 폄훼하기에는 어쩔 수 없긴 하다.~~그럼 처음부터 전쟁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 이유는 후술하겠다.]하였다. 이는 엄청난 악수가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의 점령지와 영토에는 석유가 나는 지역이 없다... 그래서 미국에게 전력상으로 매우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감행했는데, 이는 일본군의 해군과 육군 간에 크나큰 대립이 있었기에 제대로 된 결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과 일본군은 총력전을 감행하게 된다. 일본군을 포위하기 위해 연합군은 ABCD 포위망을 구성하여 일본군을 압박한다. America(미국), British(영국), China(중화민국), Dutch(네덜란드)로 구성된 포위망으로, 영국령 홍콩과 네덜란드(당시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고 있었다)가 참여했다.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선전하다가도 미드웨이 해전에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한다. 곧 일본 제국을 패망의 길로 이끄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솔로몬 제도에서 있었던 과달카날 전역을 통해 점점 일본의 제공권이 막히기 시작한다. 일본 육군을 이끌던 무타쿠치 렌야는 미얀마를 통해 인도를 공격할 계획인 임팔작전을 수립해 실행에 옮겼고, 이는 엄청난 손해를 가져온다. 기후도 맞지 않고 식량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본군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되며 필리핀 등 점령지를 빼앗기게 된다. 태평양 전쟁의 절정은 오키나와 전투와 이오지마 전투인데, 둘 모두 일본의 본토이다. 즉 본토가 공격받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포탄을 맞았던지 이오지마 섬은 불발탄 문제로 인해 일반인의 출입이 절대 금지되어 있다. 이 시기 일본군은 말도 안 되는 전략을 세워 자국군의 공군 병사를 전투기에 태워 자살시키는 가미카제, 반자이 돌격을 진행시킨다. 물론 효과는 미미했다. 이제 연합군측은 일본군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도쿄 등에 대공습을 실시하여 파멸을 만들게 된다. 그럼에도 일본군이 항복하지 않자, 미군은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하고 있던 원자폭탄을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차례로 폭탄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에서 항복하지 않자 미군은 일본을 지도상에서 없애버릴 몰락 작전을 계획하게 되는데, 다행히(?) 일본군이 8월 6, 9일 원자폭탄을 맞은 이후 6일만에 항복을 선언하며 8월 15일 마침내 일본이 패망하게 된다. 일본의 점령 하에 있었던 국가 및 지역은 모두 독립하게 되었고 한국도 이때 독립하게 되었다.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것은 9월 2일이기에 동양 국가들은 이날을 전승절로 여긴다. 이후 도쿄에서 극동 군사 재판이 열려 도조 히데키 등 전범들이 처형당하게 된다. == 이후 == 독일의 영토는 오데르-나이세 선을 기준으로 잘렸고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다.[* 미소영프가 독일을 분할한 후, 서방 국가들의 점령지를 통합해 서독이 만들어졌기에 서독이 더 크다.] 베를린은 수도라는 특이성을 고려해 동독 영토 한가운데 있음에도 추가로 반으로 잘렸다.[* 지도를 생각해 보면 서베를린과 서독은 연결되지 못하는데, 이는 나중에 소련의 서베를린 봉쇄로 이어진다.]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화되었으며 발트 3국은 소련에 강제 합병되었다. 일본의 영토 중 조선과 대만 섬은 독립했고, 각종 점령지들도 독립했으며 남쿠릴 열도와 남사할린은 소련에 병합되었다.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 등은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식민지들이 독립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막대한 전비로 인한 재정적 문제와 전쟁 피로에 따른 집권 동력 상실 등도 있다.] 전쟁에 참전시키는 대신 자치권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은 곧 탈제국주의로 이어졌고[* 미국과 소련이 의도한 바도 없지 않다. 실제로, 단편적인 이유일 뿐이지만, 미국은 영국의 해양 패권을 뺏기 위해 식민제국을 해체시키기도 했다.], 알제리나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지배국을 향해 전쟁을 하여 독립을 얻기도 했다. 전쟁으로 인해 경제도 매우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 국가들은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미국에게 원조받는 마셜 플랜을 통해 원조받게 되었다. 동구권 국가들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조약 기구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로부터 원조받았다. 즉 (초)강대국 타이틀이 영국과 프랑스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간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서는 힘의 공백으로 인해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벌여 공산당이 승리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중화민국의 영역은 대만 섬으로 축소되었다. 홍콩은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았고, 대신 한반도가 분단되어 한국전쟁을 치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프랑스나 네덜란드와 전쟁을 벌여 독립(디엔비엔푸 전투,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했고, 베트남은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나뉘게 되었다. == 여담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을 전승절이라고 하는데, 나라별로 기념하는 날이 다르다. 유럽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국가는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그런데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는 5월 9일을 전승절로 기념하는데, 이는 독일이 항복 문서를 작성할 당시 스탈린이 그 자리에 없어서 다음날 다시 직접 서명했기 때문이다. 반면 아시아권에서는 대체로 8월 15일을 기념하는데, 이는 일본군이 항복선언을 한(옥음방송) 날짜가 그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전선 모두 참여한 미국과 소련(러시아)에서는 둘 다 기념한다(VE Day, VJ Day). 산업혁명 이후로 제국주의와 함께 내려오던 영국과 프랑스의 초강대국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국과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계기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은 역사가 짧아서 유럽 국가들에게 무시를 당했으나 전후엔 유럽이 되려 마셜 플랜 등의 지원을 받는 처지로 바뀌었다. 물론 두 나라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전후에 터진 제2차 중동전쟁[* 이집트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이 있었다.]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했다가 오히려 욕을 먹고 철군하는 수모를 당하며 세계 패권이 넘어갔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 전쟁 중 인권 탄압 == 나치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우생학을 기본으로 유대인, 슬라브인, 집시 민족을 차별하며 절멸하기 위한 작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홀로코스트라고 한다. 특히 이러한 혐오 범죄의 대상은 주로 유대인이었는데,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 등에서 가스 고문을 받으며 학살당했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 내 거주하던 유대인의 수가 급감하였고, 남은 이들 대부분도 전후 건국된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로 이주하며 유럽 내 유대인 수가 극소수가 되었다. 일본에서도 비슷했으며, 난징대학살을 통해 수많은 중국인을 죽였고, 일본군 "위안부"를 통해 중국, 조선, 네덜란드령 동인도,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으며 특히 조선인 남성을 강제징용하여 노동력 충원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점령지 및 식민지의 주민을 데려다가 가미카제에 썼을 정도. == 결론 == 제2차 세계대전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중대한 사건이며, 이를 위해서 평화를 향해 세계가 화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긴 단체가 UN이기도 하고. 아무튼 세계대전이 한 번 다시 일어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