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57 ➤ r58 |
| 24 | 태초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하나님은 이미 계셨다. 하나님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로 결심했고, 말씀하심으로써 창조를 시작한다. 첫째로, 그는가 |
| 27 | |
| 29 | |
| 31 | |
| 33 | |
| 35 | |
| 37 | |
| 39 | |
| 41 | |
| 43 | |
| 44 |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있었고 온 세상과 우리를 만드신 분이다. |
| 47 | |
| 49 | |
| 55 | 첫째,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라고 말씀하셨다는 해석이다. 둘째, 고대 근동에서는 왕을 복수형으로 나타내어 높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는 해석이다. 또 하나님과 그가 만드신 천사들의 모임인 '천상 회의'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
| 58 | |
| 60 | |
| 62 | |
| 64 | |
| 69 | |
| 76 | |
| 77 | (1) 창조 이야기의 의미 |
| 78 | |
| 79 | 성경에 적힌 창조 기사는 하나님이 히브리인 수준에 맞춰 창조를 설명한 것 뿐이며, 무언가 과학적으로 서술하려던 것이 아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빅뱅에 대해 설명하며, 쿼크와 렙톤과 광자의 형성 및 태양계의 형성, 지구의 형성, 원시 지구에서의 복잡한 유기물의 생성에 대해 알려줄 이유가 뭔가? 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사실 알 필요도 없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창조 이야기를 주셨는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
| 80 | |
| 81 | (2) 본문 내의 해석 |
| 84 | |
| 85 | (3) 자연 신학 |
| 86 | |
| 93 | 태초에 말씀(λογος)이 계시니라 이 말씀(λογος)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λογος)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
| 95 | 여기서 말씀은 그리스어로 '[[LOGIC|로고스]](헬 : λόγος, 영 : logos)'로, 논리, 이성, 진리를 뜻한다. 기독교인이 믿는 하나님은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이상한 분이 아니라 논리적이시고 아름다우신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 하나님에 대해 더 알 수 있다. 교회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당시의 잘못된 성경[[성경]] 해석[* 여호수아에서 해가 멈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가지고 '지구가 도는 거면 하나님이 지구가 멈췄다고 써 놓았겠지, 왜 굳이 태양이 멈췄다고 썼겠느냐?'고 생각했다.] |
| 96 | |
| 97 | (4) 기타 |
| 98 | |
| 102 | |
| 103 | (1) 기독교인의 정체성 |
| 104 | |
| 106 | |
| 107 | 기독교인은 세상과 구별되어 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다. 바뀔 수도 있는 현재의 과학에 얽매여 왜 세상 삶과 타협하려 하는가? 억지로 세상에 맞추려 하면 도대체 기독교인인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
| 108 | |
| 109 | (2) 본문과 진화론의 불협화음 |
| 110 | |
| 118 | 기독교인은 세상과 구별되어 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다. 바뀔 수도 있는 현재의 과학에 얽매여 왜 세상 삶과 타협하려 하는가? 억지로 세상에 맞추려 하면 도대체 기독교인인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
| 121 | ====실용주의적 해석관점==== |
| 122 | 중요한 건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 지가 아니라, 창조의 의미를 따지는 것이다. 창조의 방법이 어떠했든는지는 성경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창조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창조된 우리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며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청지기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해 목숨 바치신 큰 사랑이다. 기독교의 역할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본받아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
| 123 | |
| 124 | 특수 창조론 측이나 유신진화론 측이나 왜 까마득히 오래 전에 끝난 일을 가지고 쓸 데 없이 논쟁하는가? 아무런 실익도 없는 논쟁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사회 문제들을 다루는 데 더 힘을 써야 한다. |
| 503 | |
| 505 | |
| 506 | '''중간 이야기''' |
| 507 |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잠깐 이집트로 내려갔다. 거기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 사래를 정말 예쁘다고 칭찬했는데 그걸 보고 혹시 아내를 뺏길까 두려웠던 아브람은 사래를 자신의 누이라 속인다. 그랬더니 당시 이집트의 파라오가 사래를 궁으로 들이고, 하나님은 크게 화나서 파라오의 집에 재앙을 내린다. 한바탕 소동을 겪은 아브람은 벧엘로 돌아온다. |
| 508 | |
| 509 | 둘이 가나안 땅에서 계속 살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아브람이 롯에게 말을 걸었다. |
| 510 | |
| 511 | "내 조카 롯아! 오늘도 내가 이끄는 양치기랑 네가 이끄는 양치기랑 싸웠대." |
| 512 | |
| 513 | "아, 또요! 제 양도 있고 삼촌 양도 있고 해서 이 좁은 목초지에 우리 둘 다 지내기엔 좀 힘들 것 같네요." |
| 514 | |
| 515 | "우리 가족인데 이런 일로 계속 싸우면 안 될 것 같아. 너도 이제 독립할 때가 됐잖니? 네가 방향을 정해서 한 쪽으로 이동하면 나는 반대쪽으로 갈게." |
| 516 | |
| 517 | "음, 그럼 한 번 둘러볼까요?" |
| 518 | |
| 519 | 롯이 고개를 돌려보니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가 있는 동쪽이 정말 풍요로워 보였다. 남쪽에 번성한 이집트나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동산과 같다고나 할까? |
| 520 | |
| 521 | "저는 동쪽으로 갈게요." |
| 522 | |
| 523 | "그럼 나는 서쪽으로 가지." |
| 52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