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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 | 이 모든 사실들은 (착하거나 전지전능하거나 적극적으로 악을 막으려 하는) 신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세상이 신의 뭔가 큰 뜻에 의해 창조된 게 아니라 그냥 물리적 과정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여러 악과 고통도 그냥 물리적 과정에 따라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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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 | 이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자. 이것은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입장이라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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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 | 사람들은 모두 근본적인 무언가를 믿는다. 기독교를 믿기도 하고, 다른 종교를 믿기도 하고, 특정 사상 혹은 정치적 입장, 강한 신념을 믿기도 한다. 이게 그 사람의 '''세계관'''이다. 비유하자면 수학의 공리계 같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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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 |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세계관보다 기독교 세계관을 믿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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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 | 하나님은 이겨낼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 이유도 모르고 실제로 의미 없는 고통일 수도 있지만, 기독교는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미래로 나아가게 한여기서 기독교 세계관과 무신론+유물론적 세계관의 차이가 드러난다. 무신론적이고 극도로 유물론적인 세계관에서 모든 악과 고통은 '단순 사고' 그 이상으로 생각될 수 없다. 모든 악이라 불리는 것들은 물리[[물리(교과목)|물리]] 법칙이 작동함에 따라 의도 되지 않은 부차적 사건이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이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냥, 그저 있을 뿐이다. 도대체 그런 사고방식이 세계관에서 악은 나를 성장시켜주지도 않고 미래의 평안을 약속해주지도 않고 그냥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리고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삶앞에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절망한다. 포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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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 | 그럼 기독교 세계관은 어떻게 다를까? 사실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한테 우리가 지금 왜 고통당하는지, 언제 끝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주변의 다른 교회 사람이나 목사님도 솔직히 지금 나에게 닥친 고통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 이유도 모르고 실제로 의미 없는 고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은 이 모든 고통을 이겨낼 힘을 준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
| 227 | 아직 빌드업을 덜 했지만 예수님 얘기를 해 보자.[* 사실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던 참에 하이라이트부터 얘기하는 수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 않다. 하나님은 직접 사람인 '''예수님'''이 되어서 하늘에 있는 높은 권좌에서 내려온다. 스스로의 편안을 버리고 그 누구보다도 낮아지신다. '예수'라는 이름이 사람이 되어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을 함께 겪으신다. 사람들에게 조롱 당하고, 버림 받고, 채찍질 당하고, 굶주리고, 피 흘렸다. 다른 모든 종교와 달리 기독교의 신만이 직접 사람이 되어 사람들의 고난에 동참한다. |
| 454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팔레스타인)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세기 12장 7절) |
| 458 | 성경의 핵심은 사랑이다. 원수를 포함해 조건 없이 누구든지 사랑하는 예수님 사랑이다. 전쟁은 사랑을 잃게 한다. 전쟁이 개인 각각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은 구체적으로 묘사할 것도 없이 모두 잘 알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전쟁이 하루빨리 멈추고 사랑이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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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0 | 또,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하나님-이스라엘 관계는 예수님-교회 관계로 개편되었다. 따라서 구약에 있는 하나님-이스라엘 간의 약속도 이를 고려해 재해석되어야 한다. 교회에게 가나안(팔레스타인)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내세의 소망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땅 약속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천국의 소망으로 바뀌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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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2 | (살짝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서술한 것 같아 첨언하자면, 현대 중동 분쟁은 종교적 이유 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합적인 갈등이다. 오직 종교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 |
| 463 | 그리고 보수 교회 중 일부는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 언약을 여전히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교회들이 사랑이 부족하거나 한 것은 아니며, 그러한 교회들도 전쟁에서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지 않고 존엄성이 지켜지기를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