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예준(32기)/신앙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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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이 모든 사실들은 (착하거나 전지전능하거나 적극적으로 악을 막으려 하는) 신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세상이 신의 뭔가 큰 뜻에 의해 창조된 게 아니라 그냥 물리적 과정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여러 악과 고통도 그냥 물리적 과정에 따라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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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이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자. 이것은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입장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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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사람들은 모두 근본적인 무언가를 믿는다. 기독교를 믿기도 하고, 다른 종교를 믿기도 하고, 특정 사상 혹은 정치적 입장, 강한 신념을 믿기도 한다. 이게 그 사람의 '''세계관'''이다. 비유하자면 수학의 공리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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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세계관보다 기독교 세계관을 믿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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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하나님은 이겨낼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 이유도 모르고 실제로 의미 없는 고통일 수도 있지만, 기독교는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미래로 나아가게 한여기서 기독교 세계관과 무신론+유물론적 세계관의 차이가 드러난다. 무신론적이고 극도로 유물론적인 세계관에서 모든 악과 고통은 '단순 사고' 그 이상으로 생각될 수 없다. 모든 악이라 불리는 것들은 물리[[물리(교과목)|물리]] 법칙이 작동함에 따라 의도 되지 않은 부차적 사건이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이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냥, 그저 있을 뿐이다. 도대체 그런 사고방식이 세계관에서 악은 나를 성장시켜주지도 않고 미래의 평안을 약속해주지도 않고 그냥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리고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삶앞에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절망한다.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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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그럼 기독교 세계관은 어떻게 다를까? 사실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한테 우리가 지금 왜 고통당하는지, 언제 끝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주변의 다른 교회 사람이나 목사님도 솔직히 지금 나에게 닥친 고통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 이유도 모르고 실제로 의미 없는 고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은 이 모든 고통을 이겨낼 힘을 준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227 아직 빌드업을 덜 했지만 예수님 얘기를 해 보자.[* 사실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던 참에 하이라이트부터 얘기하는 수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 않다. 하나님은 직접 사람인 '''예수님'''이 되어서 하늘에 있는 높은 권좌에서 내려온다. 스스로의 편안을 버리고 그 누구보다도 낮아지신다. '예수'라는 이름이 사람이 되어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을 함께 겪으신다. 사람들에게 조롱 당하고, 버림 받고, 채찍질 당하고, 굶주리고, 피 흘렸다. 다른 모든 종교와 달리 기독교의 신만이 직접 사람이 되어 사람들의 고난에 동참한다.
45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팔레스타인)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세기 12장 7절)
458 성경의 핵심은 사랑이다. 원수를 포함해 조건 없이 누구든지 사랑하는 예수님 사랑이다. 전쟁은 사랑을 잃게 한다. 전쟁이 개인 각각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은 구체적으로 묘사할 것도 없이 모두 잘 알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전쟁이 하루빨리 멈추고 사랑이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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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 또,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하나님-이스라엘 관계는 예수님-교회 관계로 개편되었다. 따라서 구약에 있는 하나님-이스라엘 간의 약속도 이를 고려해 재해석되어야 한다. 교회에게 가나안(팔레스타인)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내세의 소망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땅 약속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천국의 소망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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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 (살짝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서술한 것 같아 첨언하자면, 현대 중동 분쟁은 종교적 이유 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합적인 갈등이다. 오직 종교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
463 그리고 보수 교회 중 일부는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 언약을 여전히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교회들이 사랑이 부족하거나 한 것은 아니며, 그러한 교회들도 전쟁에서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지 않고 존엄성이 지켜지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