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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성경에 과학적, 역사적으로 틀린 것처럼 보이는 표현이 나온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오류 없이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고, 과학책이나 역사책이 아니다. 과학, 역사 지식이 부족한 고대인들의 수준에서 틀리게 서술했다고 해도 구원[* 모든 인간이 묶여 있는 무거운 죄의 짐을 벗고, 하나님과의 순수한 관계를 회복하며,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죽은 뒤 삶에서 영원히 살면서 행복해지는 것.]에 이르는 진리까지 오류를 범했다는 뜻이 아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에게 뭐 틀렸다고 엄청 뭐라 하진 말자. |
| 57 |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가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 즉 과학이다라고. 바울은 로마서에서 |
| 65 | 여기서 말씀은 그리스어로 '[[LOGIC|로고스]](헬 : λόγος, 영 : logos)'로, 논리, 이성, 진리를 뜻한다. 기독교인이 믿는 하나님은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이상한 분이 아니라 논리적이시고 아름다우신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 하나님에 대해 더 알 수 있다. 교회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당시의 잘못된 성경 해석[* 여호수아에서 해가 멈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가지고 '지구가 도는 거면 하나님이 지구가 멈췄다고 써 놓았겠지, 왜 굳이 태양이 멈췄다고 썼겠느냐?'고 생각했다.] |
| 78 | 또, 진화론이 참이라면 이전에도 약육강식과 고통, 재해가 있었다. 이는 사람의 원죄 이후 악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원죄론을 약화시키고, 결국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인 예수님이 되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벌 받았다는 사상]의 필요성을 상실하게 한다. |
| 80 | ====결론실용주의적 해석==== |
| 81 | 중요한 건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 지가 아니라, 창조의 의미를 따지는 것이다. 창조의 방법이 어떠했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창조된 우리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며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청지기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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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 라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
| 167 | 왜 평생 봉사를 해온 노인이 말기 암으로 고통 받으며 죽는 걸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고 선하다면 왜 사랑하는 인간들을 위해 악을 단번에 없애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악과 고통을 만들지 않았으면 되는 일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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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 이 모든 사실들은 (착하거나 전지전능하거나 적극적으로 악을 막으려 하는) 신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세상이 신의 뭔가 큰 뜻에 의해 창조된 게 아니라 그냥 물리적 과정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여러 악과 고통도 그냥 물리적 과정에 따라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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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 이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자. 단, 아래 각 탭의 내용들은 서로 다른 신학자들이 따로 생각한 것이고, 때로 서로 다른 두 신정론이 서로를 반박하기도 한다는 점을 유의하도록 하자. |
| 189 | 그가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벌 받았다. 덕분에 죄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었다. 하나님은 악의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해결하셨다. 물론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현재의 악은 일시적일 뿐이다. 앞으로 올 하나님의 나라엔 아무도 눈물 흘릴 일이 없을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희생하여 자유의지로 발생한 모든 죄악을 없앤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사람을 고통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같이 고통 당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종국엔 누구나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한다. |
| 246 | "[[삐빅|어? 아니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도 아니고..." |
| 308 | 우트나피쉬팀과 사람들은 방주에서 나왔다. 동물을 잡아 제사를 바쳤는데, 고기 냄새향기를 맡고 굶주린 신들이 파리 떼처럼 몰려왔다. 그대홍수 동안 인간이 바친 제물을 먹지 못해 매우 굶주렸기 때문이다. 신들은 엔릴에게 왜 생각 없이 대홍수를 일으켰냐고 따졌다. 엔릴은 우트나피쉬팀에게 영생의 풀을 주어 신들이 사는 낙원에 살 수 있게 하였다. |
| 319 | 그렇다면 기독교의 노아의 방주가 다른 홍수 신화보다 특별히 더 좋은 점이 무엇일까? 기독교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다른 홍수 설화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면 기독교를 믿을 필요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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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1 |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라고 뭉뚱그린 부분에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엔릴이 화를 내며 홍수를 일으킨 이유는 고작 자기가 자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인간들은 활발한 동적 질서를 갖는 반면 신들은 고요한 정적 질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라하시스(AtraḪasīs-Mythos)'와 창세기의 인간 이해 - '아트라하시스'의 아카드어 본문 번역을 중심으로 -, 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전좋아)] 즉, 자기 편하라고 홍수를 일으킨 것이다. 반면 창세기의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너무 커서 땅이 그 죄로 물들은 것을 보고 정의로 심판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키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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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3 |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신들은 인간이 바치는 제물을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애초에 자기들이 일을 안 하려고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수 동안 메소포타미아 신들은 아무것도 못 먹고 굶주림에 힘겨워했다. 사실 제물 앞에서도 엔릴은 누가 왜 인간을 살려 놨냐고 호통을 치고 엔키가 둘러대며, 다른 신들이 너 때문에 배고파 죽겠다고 엔릴을 욕하면서 싸운다. 배고파서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흡족해 하시고 노아와 약속을 맺은 하나님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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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5 | 마지막에 맺은 약속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욕구를 반영하여, 우트나피쉬팀 이야기의 결말은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으로 끝난다. 즉, 그들의 관심은 영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하나님은 노아한테 서로 싸우면서 피 흘리지 말라는 약속을 하는데, 그 관심이 선과 악에 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