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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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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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본래 카르타고로 불리며 깊은 유서를 자랑한 지역이었다. 그러나옆 나라인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는 카르타고의 이름을 딴 튀니스 카르타고 공항이 있을 정도.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카르타고를 상대로 이기며면서 로마의 영토가 되었고, 이는 동서로마 분열수백년 동안 이어져 로마의 영토가 되었다. 이는 로마에서 지중해만 건너면 북아프리카가 나올 정도로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로마 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 제국으로 나뉠 때까지 이어졌지게 된다. 처음에 알제리는 서로마 제국에 속했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반달 왕국이 들어서서 알제리를 지배하하게 된다. 이 시기까지 알제리는 사실상 유럽 문화권으로서, 수많은 대농장이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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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중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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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서로마 제국은 이후 훈족에 남하로 인해 게르만족이 이곳저곳을 찌르고 다니면서, 서로마 제국이 반달족, 고트족 등에 의해 공중분해되게 된다. 알제리에는 반달 왕국이 들어서 게르만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후6세기 동로마 제국이 다시 서방으로 고토 회복을 노리며 알제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 로마 제국의 수도의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고토 회복을 목적으로 반달 왕국을 멸망시키며 동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와는 달리 당시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알제리에서(현 이스탄불)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기 때문에 관리가 잘 안되었고, 7세기 아랍 제국원활하게 되지 않아 7세기에는 우마이야 왕조의 침략에 의해 아랍화 및 이슬람화된되었다. 이슬람화된 직후 여러 군벌들의 활동지가 되었다가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적들이 난립하자 프랑스는 이의 해결을 빌미로 알제리를 침략하여 식민지가 된다. 그러나 인근 서아프리카 지역인 모로코, 튀니지와는 달리 알제리는 프랑스의 본토로 취급받았는데, 이는 알제리와 프랑스가 지중해만 건너면 될 정도로 가까웠으며 기후가 비슷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아프리카 국가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와중에도 알제리는 프랑스의 본토라는 이유로 독립하지 못했으며 결국 알제리 독립 전쟁을 치러 독립할 수 있게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리비아,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던 베르베르인이나 도니루스파 기독교인은 원활한 교역을 목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완전한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알제리에는 이후 아바스 왕조, 아글라브 왕조, 파티마 왕조, 지리 왕조, 함마드 왕조, 무와히드 왕조가 차례로 들어선 이후 오스만 제국이 알제리를 지방 번국의 형태로 점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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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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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오스만 제국 아래에서 일부 해적들이 꺵판치던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평화로웠으나 프랑스가 1830년 해적 토벌을 명목으로 침공하며 식민지로 삼는다. 프랑스령 알제리라는 이름 하에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이는 프랑스 남부 해안지대와 알제리 북부 해안지대는 모두 지중해변이므로 환경이 비슷하며 적당히 덥고 비도 적당히 와서 토질이 비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 본토와 동일한 데파르트망이 설치되어 식민지가 아닌 본토로 취급받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기회를 노리고 알제리로 이사 온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을 피에 누아르라고 한다. 물론 일부 피에 누아르들을 제외한 기존 주민인 아랍인들은 철저하게 차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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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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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독립의 열기가 불어오는 중, 알제리인의 시위를 프랑스군이 무력 진압하면서 알제리에도 독립 열풍이 불게 된다. 당시 프랑스 식민제국은 수에즈 위기, 베트남 독립 전쟁 등으로 쇠락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알제리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알제리 전쟁에서 알제리의 요구를 프랑스가 들어주기로 결정하며 국민투표를 통해 마침내 알제리는 독립을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알제리 내부에 건설된 성당은 모두 이슬람식 모스크로 바뀌었고, 알제에 있던 노트르담 성당은 국립도서관으로 바뀌는 등 알제리인의 반프랑스 감정은 엄청났다. 당시 알제리인들은 독립 과정에서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좌경화되었고, 이 때문에 국명이 알제리 인민 민주 공화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