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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여기서 [[유대교]] 및 [[기독교]]랑 세속 역사학의 입장이 미묘하게 다르다. 양측 모두 왕정 시대에 혼합주의 종교가 주류였다는 사실은 받아들인다. 열왕기와 역대기에도 혼합주의 종교가 압도적인 것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유대-기독교 측은 "원래 하나님은 명확히 유일신 사상을 알려 주셨는데, 그들이 스스로 어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세속 역사학은 "애초부터 가나안 지역 다신교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원래 유일신교'는 없다"고 주장한다. 십계명에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 나온다. 역사학의 방법론으로는 수천 년 전에 모세가 실제로 시나이 산에서 전지전능한 유일신에게 그것이 적힌 돌판을 받았는지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개인적인 믿음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다. |
| 59 | '''바리새파'''는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집단이었다. 토라와 그렇지 않은 구약 성경을 모두 인정했다. 현대 유대교의 뿌리이다. '''사두개파'''는 제사장 집단이었다. 로마와 친한 기득권층이었으며, 원래 레위인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십일조를 먹었다. 오직 모세오경만 인정했다. 천사나 부활 등을 거부하였다. '''에세네파'''는 금욕주의 집단이었다. 세상과 단절되어 사막에서 조용히 종교 활동을 했다. '''열심당'''은 무력을 사용해 로마로부터 독립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이들은 사두개파를 로마에 빌붙은 타협한 자들이라고 생각해 매우 싫어했다. |
| 61 | 이 시기 유대교는 [[로마가 인정해 주는 이미 존재하는 종교 중 하나였다. 로마는 이미 오랫동안 믿고 있던 종교는 인정해 주었지만, 새 종교를 만드는 것은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유대교의 참 뜻을 찾는 종교라고 주장하였다.] |